고스트(Ghost)와 팬텀(Phantom)은 둘 다 ‘유령’이지만, 먹이통은 150cc쯤 차이가 난다. 먹이통의 차이에 비해 몸값의 차이는 무려 3억원이다. 팬텀이 7억3천만원, 고스트가 4억3천만원. 일 년에 한 5억 쯤 생활비로 쓰는 장관 후보자라도 선뜻 나서지 못할 것 같은, 고가 외제차를 보면 맛이 가는, 우리나라에서 주머니가 제일 빵빵한 자들이 선호하는 롤스로이스 자동차 얘기다.

몇 년 전 삼겹살이 금값으로 치솟자 군대에서도 돼지고기 대신 한우를 보급한 적이 있었다. 그해 초 500g에 9천원 남짓하던 삼겹살이 1만2천원까지 올랐고, 한우는 소비가 줄면서 1㎏에 1만5천원 남짓하던 게 1만1천원대까지 떨어졌더랬다. 당시 군대에 가 있던 필자의 아들과 통화를 하면서 “넌 소고기 싫어하는데 안 됐다”고 농담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최근 영국의 BBC에서 21세기에 만들어진 영화들 중에서 잘 만들어진 작품 100편을 골라 소개했다. 대략 반 정도는 본 작품들이었는데, 목록을 살펴보다가 당연하면서도 신기하게 든 생각: 이른바 블록버스터가 한 편도 없다는 거! 돈 많이 들인 영화 중 좋은 영화가 별로 없다는 건 한편으론 당연한 일이다. ‘돈 많이 들여 공부한 사람들 중에 좋은 사람이 별로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라고 하면 돌 맞을까? 돌을 맞더라도 이 생각은 꽤 논리적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들인 돈을 빼야 한다는 ‘장사꾼의 논리’가 좋은 영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불암’ 시리즈처럼 서양유머에는 ‘램프의 요정’ 시리즈가 있다. 그 중에 하나: 한 여자가 애지중지하는 자신의 수고양이와 다락방을 청소하다 램프를 발견했다. 여자가 앞치마로 먼지 묻은 램프를 닦는 순간 지니가 나타났다. 램프의 요정은 그녀에게 세 가지 소원을 얘기하라고 주문했다. 고민 끝에 여자가 소원을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20대의 여자가 되고 싶고요, 세상에서 제일 돈 많은 여자가 되고 싶고요, 그리고 제 고양이가 멋진 왕자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램프의 요정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뭉게구름이 피어올랐다. 구름이 사라지자 여자는 자신이 아름다운 20대로 변신한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의 주위에 천 달러짜리 지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자는 흥분된 마음으로 자신의 고양이가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또렷한 눈매에 오뚝한 코, 섹시한 입술, 딱 벌어진 어깨, 초콜릿 복근, 축구선수의 장딴지를 가진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가 묘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와 부드럽게 속삭였다. “자, 저한테 왜 중성화수술을 시켰을까, 후회되지 않나요?”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는 저 유명한 노랭이 영감 스크루지가 등장한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괜히 넉넉해지는 크리스마스이브에도 동전 한 푼에 울고 웃는 스크루지 영감의 성정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다 7년 전에 죽은 친구의 영령을 만나면서 극적으로 삶이 바뀌는 얘기다. 소설은 소설이다. 디킨스가 다시 살아와도, 드라마틱한 반성의 드라마를 아무리 펼쳐도, ‘돈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돌아버린 세상이 어찌!
 

하창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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