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엄마 손에 이끌려 어딘가로 놀러가는 일에 신이 났다. 기묘한 자세로 공을 굴리는 서커스가 그랬고, 무슨 축제에서 선발된 아가씨들이 거리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모습도 마냥 신기했다. 평소에 볼 수 없는 낯설고 흥겨운 풍경들에 마음을 온통 빼앗겼다.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다. 무엇보다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며 즐기는 추석이 본래 축제가 아닌가. 요즘은 계절에 상관없이 사계절 축제가 열린다. 그런데 너무 많아서일까? 축제가 마음을 설레게 하지 않는다. 지난해 그 모습으로 또 축제는 열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숫자의 방문객이 찾았다며 늘 성공을 보도하곤 하지만 무감각하다.

‘축제’라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던 우리를 누가 이렇게 무감각하게 만들었을까? 추적해보면 독재시대에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해 획일적인 통치에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관제 향토문화제들이 탄생했고, 지방자치제도가 본격 실시된 1990년대 중반부터는 또 다른 축제가 경쟁적으로 생겨났다. 자치단체장의 업적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다보니 자치단체마다 행정이 앞장서서 축제 키우기에 열을 올리고, 조금 되는 축제다 싶으면 어김없이 벤치마킹해 유사상품을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풍토에서 춘천은 사실 관이 주도하거나 영향력을 발휘하는 축제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예술축제의 경우 대부분 예술가나 기획자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태동해 지역의 이미지 향상에 크게 기여하며 성장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축제들은 지금 한두 사람이 중심이 돼 운영되는 시스템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있다. 춘천마임축제, 인형극제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변화의 틀을 새롭게 만들기는 했으나 아직 불안한 시선을 거두기가 어렵다. 깊이 들여다보면 축제들은 20년을 훌쩍 넘는 연륜을 지니면서 춘천의 문화코드가 되었으나 폭넓은 지역문화로 자리매김하지는 못했다. 늘 감질나듯 지원하는 행정이나, 구경꾼에 머무는 시민들의 역할 또한 미미하다. 잠재력 있는 자원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지역의 무관심과 무지일 수 있다. 서로 다른 힘이 모여 더 큰 판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다.
또한 춘천의 대표 먹을거리인 막국수와 닭갈비를 기반으로 하는 막국수닭갈비축제(닭갈비막국수축제)는 대중성이 높지만 호불호가 크게 엇갈린다. 매년 업소들이 들어서고 거기에 약간의 이벤트를 곁들이는 반복된 축제방식이 많은 사람들을 식상하게 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적지 않은 논의가 있기는 했으나 이해관계가 복잡한 듯 새로운 시도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축제는 무엇보다 만드는 사람이 주인이어야 한다. 지역민이 노는 놀이판이어야 한다. 관광객을 모시는 축제에만 열을 올리다보니 정작 지역의 바닥에서부터 흥겹고 그 흥이 외부로 전파되는 에너지가 부족하다. 춘천의 축제들은 풍선에 바람이 빠져 있듯 탱탱하지 않다. 춘천의 기운이 어디로 새고 있는 걸까?

유현옥 (문화커뮤니티 금토 상임이사)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