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춘천에 온 지 만 6년이 넘어간다. 고향을 떠나 학교 다니고 수련을 받으면서 서울에 살았던 기간을 빼면 세 번째로 가장 오래 산 곳이다. 나에게는 세 번째 고향인 셈이다. 나름 감회에 젖을 만도 한데, 방사능 수치가 높은 춘천에 살다보니 강박증이 생긴 걸까?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곳에 살면서 나는 얼마만큼의 방사능에 노출되었을까? 측정 경험상 내가 살고 있는 동네(퇴계동)의 평균적인 방사선 노출량을 0.0004mSv(= 400nSv)/hr로 잡고 계산해봤다. 1년에 약 3.5mSv, 6년간 노출된 양은 적게 잡아도 20mSv는 족히 되는 것 같다.

여기에서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핵발전소에서 평생 근무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노출되었을까?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 최소 1년 이상 핵발전소에서 근무한 30만 명을 추적 조사한 연구1)가 있었다. 그들의 평균 누적노출량은 16mSv였다. 40만 명의 핵발전소 근무자들에 대한 또 다른 코호트 연구2)도 있었다. 그 논문에서 근무자들의 평균 누적노출양은 19.4mSv였다. 춘천에 살고 있는 나보다도 적게 노출된 셈이다. 달리 얘기하면 나는, 그리고 춘천에 살고 있는 시민들 중 다수가, 핵발전소에 살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두 연구 모두 공통적으로, 방사선 노출량에 비례해서 암 발생율과 사망률은 증가했다. 그렇다면 6년이 넘게 춘천에 살고 있는 나는 핵발전소에 근무하는 사람과 비슷하게 노출되었기 때문에 암 발생 위험성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엔 우리의 위험성이 핵발전소 근무자들보다 더 높을 수도 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핵발전소 근무자들은 퇴근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르긴 해도 하루에 절반 이상은 핵발전소에서 벗어나서 집이나 거주지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방사선에 노출되는 양이 정상수준으로 줄어들어 있었을 것이다. 이 점은 인체의 DNA가 방사선으로 인한 손상에서 회복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간을 제공한다. 하지만 우리들 대다수는 춘천에 늘 머물러 있다. 춘천에 사는 우리의 세포는 회복될 새도 없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정상보다 높은 수준의 방사선에 노출돼 있다. 우리는 핵발전소에 ‘근무’하고 있는 게 아니라 ‘살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는 핵발전소 근무자들은 모두 성인이라는 점이다. 근무자들이 어린이였거나 청소년, 임산부였을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춘천이라는 핵발전소에는 아이들과 청소년들, 심지어는 임산부들까지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성인들보다 훨씬 더 방사선에 민감하다.

얼마 전 심리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건강하게 오래 사는 능력이야말로 지능이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능을 아이큐(IQ) 정도로만 인식해왔던 내게는 지능의 개념을 새롭게 규정하는 얘기였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세상에 있는 위험은 덜 위험한 것이 있고 더 위험한 것이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험과 우리가 모르는 위험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지능적’인 태도다. 그리고 대개는 모르는 위험이 더 위험하다. 춘천의 방사능은 그 자체가 위험한 문제라기보다는 그에 대한 우리의 무지가 오히려 우리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 동네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염려를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

1) Ionising radiation and risk of death from leukaemia and lymphoma in adiation-monitored workers(INWORKS): an international cohort study. Lancet Haematol 2015; 2: e276-81.

2) A New era of low-dose radiation epidemiology. Curr Envir Health Rpt. 2015 Sep; 2(3): 236-49.

양창모(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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