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차고 넘치는 먹을거리, 시시때때 맛있는 것을 찾아 먹고 마시는 사람들,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고기에 코를 박는 모습이 나를 불편케 한다. 잘 먹었다며 헤어져 집에 오면 끝없이 당기는 물. 속이 불편해 내뱉는 경망스러운 트림은 가슴을 두드리게 만들고, 다음날 아침 화장실에 피어나는 지독한 냄새는 무엇을 먹는다는 행위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

자극적이어야 살아남을 듯 날이 선 단어와 감성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에 순하고 자연스럽고 간소한 음식을 만나는 일은 가능이나 할까? 혼자만의 갈증으로 지내다 유명세로 만난 한강의 책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란 고기류를 피하고 주로 채소, 과일, 해초 따위의 식물성 음식으로 식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아버지의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멀리하는 주인공과 동물에 대한 폭력을 거부하며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교차되는 건 음식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일 듯.

마침 얼마 전 서울 혁신파크에서 열린 비건축제에서 그들을 만났다. ‘비건(Vegan)’이라 함은 유제품과 동물의 알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의 교과서(FM; Field Manual)다. 짐승을 학대하는 생명의 존엄성 침해에 반대하며,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이나 화장품류처럼 동물을 이용해 만들어진 모든 상품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넓은 의미의 비건이다.

건강이 목적일 수도 있고, 종교적 이유 때문에. 윤리적 이유로, 아님 그냥 호불호에 따른 생활양식일 수도 있는 그들의 선택은 가을처럼 빛났다. 내 단백질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표정! 채식으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동물사랑과 생명존중의 가치를 실천하는 유기동물보호봉사단 모집 포스터. 텀블러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비건 밀크티를 공짜로 얻고, 멸종위기 동물을 구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을 담은 펭귄소품 만들기 체험에 줄이 서고, 나에겐 낯선 현미콩 불구이, 비건 스테이크, 베지 커틀릿, 캘리포니아롤, 비건 어묵탕꼬치, 컵밥, 자장면, 수제 초콜릿과 30분을 기다린 비건 아이스크림 등등!

건강한 음식에 대한 세상의 편견이 없어지기를 꿈꾸는 그들의 잔치에서 생명을 생각하며, 솔직하고 정직한 음식을 먹고, 실컷 놀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한 그곳은 잡식주의인 나에게도 행복한 공간이었다. 비거니즘(Veganism)의 가치관이 까다롭고 특이한 것이라는 편견보다 좋아 보이고, 따라하고 싶고, 궁금해지는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처럼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은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식물에서 시작해 인간에서 정점을 이룬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은 곧 나의 표현이며 삶의 방식의 표현이다. 소비자란 이름으로 불리며 자연과 그 속의 생명체들에게 폭력의 주체가 되지 않기를….

채성희(슬로푸드 지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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