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 서술에만 8페이지…집필진 다수가 ‘뉴라이트’

친일, 뉴라이트, 친박정희 역사교과서로 낙인찍힌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이 공개됐지만 앞날이 순탄하지 않다.

교육부는 지난 28일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과 집필진을 공개하고 의견수렴에 나섰다. 그러나 현장검토본을 공개한 당일 오후부터 전국 17개 시·도교육감, 시민단체, 역사학계, 언론 등이 일제히 포문을 열면서 국정교과서 채택이 사실상 어려운 것 아니냐는 시각이 우세해지고 있다.

국정교과서에 비판적인 시각은 대체로 집필진의 성향, 친일 미화, 현대사 서술, 박정희정권 미화로 귀결되고 있다. 이런 논란은 이미 교육부가 지난해 10월 12일 국정교과서 발행 계획을 공식 발표하면서부터 문제가 됐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바뀌는 교과서는 2018년부터 순차 적용되는데, 교육부는 역사교과서만 시기를 앞당겨 2017년부터 적용하는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을 지난해 11월 5일 고시하면서 국정화를 위한 행정절차를 마무리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교과서의 편향성을 지적하며 국정화를 강하게 추진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0일 국무회의에서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고,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어록을 남기며 국정화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집필진 대다수가 뉴라이트

여기에 더해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가 끝까지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교과서 편찬을 추진해온 것도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에 함께 공개된 국정교과서 집필진 구성의 편향성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2011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표방하며 출범한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 출신들이 집필진에 다수 포진돼 있다는 것이다. 현대사학회의 초대 회장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우편향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현장 채택률이 극히 저조했던 교학사 검정교과서의 대표 저자다. 강원도에서는 강원대 사학과 손승철 교수와 퇴직 교사 정일화 씨가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국편은 “비록 필자 중 일부가 한국현대사학회에 참여하거나 과거 일부 보수적인 발언을 했지만, 이들은 학문적 전문성을 가지고 교육과정과 편찬기준에 준거해 집필했다”고 반박했다. 국편은 “현대사 집필진에는 정치사, 경제사, 군사사 전공자로서 다수의 연구성과를 제출한 전문가들이 참여했다”며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특수상황(남북분단)에서 헌법가치에 맞는 국가 정체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헌법 전문가가 집필에 참여했고, 단기간에 산업화에 성공한 경제발전 과정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경제사 전공자가 참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교총도 “반대”

국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28일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이 공개되자 우려는 현실이 됐다. 전국 17개 시·도교육감 중 14명의 교육감이 국정교과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고, 1명은 보류, 2명만 찬성입장을 나타냈다. 교육 현장의 역사교사들도 잇따라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교총에 소속된 교사들은 현장검토본 공개 후 교과서 체제나 구성, 내용과 별도로 교과서가 수업에서 제대로 활용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했다. 교사들은 가장 큰 문제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방향성과 배치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새 교육과정은 교사의 강의 위주가 아닌 학생 중심의 참여형 수업을 목표로 한다. 이건홍 백영고 수석교사는 “검토본에는 교과서만으로 학생이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박정희 정부에 대한 서술이 8쪽도 넘어

역대 대통령에 대한 설명 중 박정희 정부에 대한 설명이 8.5쪽으로 가장 긴 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도 있었다. 중앙일보에 의하면 전두환 정권에 대한 설명은 2쪽, 노태우 정권 이후부터는 모두 1쪽 분량이다. 박정희에 대한 미화도 지적됐다. 연합뉴스는 국정교과서는 “5·16을 ‘군사정변’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정권찬탈 당시 군복을 입은 박정희 소장과 차지철 등 군인들의 사진은 빼는 대신, 박정희 대통령이 1976년 포항제철 제2고로에 불을 붙이는 모습과 함께 ‘철강산업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포항제철은 세계적인 철강회사로 성장했다’는 사진설명을 수록했다”고 밝혔다.

중·고 교과서, ‘같은 내용 다른 서술’

 

 

고조선의 문화와 관련해 중·고 역사교과서에 다르게 서술된 점도 오류로 지적됐다, 고조선의 대표문화인 비파형 청동검의 분포지역에 대해 중학교 교과서에는 영남지역까지 비파형 청동검이 분포하는 것으로 기술됐지만,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영남지역이 누락돼 있다. 논란을 해명하겠다는 교육부의 무지도 문제로 드러났다. 현장검토본 공개 후 논란이 되자 교육부는 해명에 나섰지만, 해명에 나선 첫 장부터 잘못 그려진 태극기를 내보내 뭇매를 자초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의한, 박근혜 대통령을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교과서”

국회 교육문화체육위원장인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은 29일 국회의원-비상대책위원 연석회의에서 “이번 역사교과서 내용을 보면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면철회를 해야 할 만큼 전반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에 의한, 박근혜 대통령을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교과서”라고 비판했다. 역사학자 출신인 더민주당 강창일 의원은 “원로학자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1980~1990년대의 역사적 성과를 반영하지 못했다”며 “왜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제목에 못 달고 동학혁명을 운동으로 폄훼하는가? 역사의 기본도 모르는 초보자 엉터리 역사학자에 의해 쓰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국정교과서, 박근혜가 박정희에게 바친 사부곡(思父曲)”이라고 단정했다.

한국갤럽, 국민 67% “반대”

 

 

 

한국갤럽이 지난 11월 29일부터 12월 1일까지 전국 성인 1천3명에게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해 물은 결과 67%가 반대했다. 찬성은 17%에 불과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기 아빠만 미화했다고 생각해요”라는 어느 여고생의 말처럼 대다수 국민들과 역사학계, 시민단체, 보수성향 교원단체인 교총을 비롯한 교육관련 단체들까지 국정교과서를 친일, 박정희 독재미화, 뉴라이트 계열의 편향·왜곡된 교과서로 단정하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오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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