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너른 집을 동경하는 사람이 참 많다. 많은 상상을 펼칠 수 있는 마당이란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 때문이다. 마당에서는 환갑잔치, 결혼잔치, 탈곡, 풀 썰기 등을 비롯해, 여름날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 위에 앉아 온 가족이 강냉이, 감자, 호박으로 끼니를 때우던 정겨운 생각도 불러일으킨다. 어디 그뿐이랴. 모든 식구가 방으로 들어가고 나면 마지막으로 멍석을 말기 전에 은하수가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오누이가 별 세기 내기를 했던 아름다운 추억도 간직한 곳이다. 마당은 정말 유용한 공간이다.

설미마을에 가면 그런 정겨운 추억을 간직한 집이 있다. 동네사람들은 그 집을 ‘마당 너른 집’이라 부른다. 그 마당 너른 집에는 두 여자 신선이 살고 있었다.

늦가을 제법 쌀쌀한 날씨 탓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이었다. 땅 안개마저 감돌면서 피부로 다가와 추위는 더 싸늘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와 서리 내린 날 아침의 찬 기운을 우리는 옷깃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소개를 받고 도착한 마당 너른 집이 있는 곳은 큰 설미라는 마을이었다. 한자로는 선동(仙洞)이라 한다. 이름 그대로 설미에는 신선이 있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 신선 같은 착한 마음씨를 간직하고 있었다. 마당 너른 집에 도착하자 김장 준비가 한창이었다. 모녀는 따뜻한 화로를 내놓고 우리를 옆에 앉으라고 너무나 친근하게 권했다. 따뜻한 화로를 마주하자 갑자기 어린 시절 화롯가의 추억이 스쳤다. 모녀의 말씨며, 표정이며, 인심도 우리가 신선마을 설미에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바로 마당 너른 집의 주인공은 김옥란(87)과 남궁옥자(63)라는 모녀였다.

설미는 춘천시 신동면 팔미리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큰 설미, 작은 설미가 있다. 설미고개를 넘으면 깨낄로 해서 강촌으로 갈 수 있다. 산길이 험하고 가파르기 때문에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겨운 시골풍경을 원한다면 한 번 쯤 가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고갯마루에는 목을 축일 수 있는 샘물도 있고, 잠시 쉴 수 있는 정자도 있다.

마당 너른 집의 모녀는 우리 질문에 참 정답게 이것저것 얘기를 들려주었다. 설미의 지명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신선이 사는 동네란다. 왜 설미라 얘기하면서 한자로 신선 선(仙)자에 마을 동(洞)자를 쓰는 지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설미는 ‘설뫼’에서 비롯한 말이었다. 우리 고어에 설은 ‘ᄉᆞᆯ’이라 하는데, 이는 신성(神聖)을 뜻한다. 곧 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신성(神聖), 숭고(崇高), 결백(潔白)을 나타낸 신(神)이 사는 성역(聖域)을 말한다. 이 때문에 ‘ᄉᆞᆯ뫼’는 설악산의 뜻과 같이 ‘신이 기거하는 성스러운 지역의 산’이란 뜻이다. ‘ᄉᆞᆯ뫼’가 변해서 지금은 ‘설미’ 또는 ‘설밀’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니 설미는 신선이 사는 동네라는 의미가 된다.

우리에게 마당 너른 집을 소개해 준 또 한 명의 설미마을 여신선이 있었다. 박외근(74)이라는 분이다. 이 분을 만난 것은 마을 가운데 있는 정자에 걸려 있는 시 현판 때문이었다. 마을 중간에는 장승이 두 기가 있고, 장승 뒤로는 마을정자가 있고, 정자 옆에는 느티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있다. 상수리나무에는 제의를 지낸 흔적이 있고, 나무 가운데가 텅 비어있고, 죽어 말라 있었다. 그런데 우리를 이끌어 박외근 씨를 만나게 한 것은 바로 그곳에 기록되어 있는 시 내용 때문이었다.

시 제목은 ‘도토리(상수리)나무’라 했다.

산마을 세 갈래 길목에
우뚝 솟아있던 상수리나무
천둥 번개 회오리 비바람에
모습조차 짐작할 수 없도록
꺾어져 버렸네.
나무는 말 한 마디 없네.
다만 꿈을 키울 뿐
계곡의 맑은 물길이
상수리나무 손잡고
푸른 잎이 나오길 기다려보네.
먼 훗날 상수리나무 밑에서
이 마을의 정다움이 오순도순
도토리나무 숲을 이루네

우리가 집 앞에 도착하자 방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따뜻한 차를 내 놓았다. 그런데 참 의외였다. 시를 쓴 박외근 씨는 초등학교에 다닌 것이 학력이 전부였고, 열심히 일하며 자녀들을 키워 온 이 땅의 다른 어머니들과 같은 평범한 분이었다. 그런 따뜻한 마음이 시로 나온 것이었다. 몇 년 전 어느 날 춘천에 회오리바람이 불며 온갖 나무와 집 등을 쓰러뜨린 일이 있었다. 얼마나 바람이 센지 회오리바람이 지나는 길목에는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 박외근 씨는 집에서 그 바람을 혼자 당했다. 문이 뜯어져 날아가고 비가 방으로 쏟아졌고, 바람소리가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그렇게 무서운 밤을 보내고 날이 새서 바람이 잦아들자, 마을로 나와 보니 정자 옆의 상수리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그때 본인의 집이 망가졌거나 밤새 두려움에 떨었던 생각보다도 마을나무인 상수리나무가 쓰러진 것이 마음 아팠다.

설미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이런 포근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마을 이름처럼 신선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

이학주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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