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호텔비 대납으로 사퇴한 불프 전 독일 대통령

“뉴스에서 한국소식을 들었어? 그게 사실이니?”

첫인사가 이렇게 굳어진 독일생활이 두 달이 돼가고 있다. 독일 언론에서 다루고 있는 한국 대통령 이야기가 그들에게는 믿기지 않는 소설 같은 모양이었다. ‘무슨 뉴스냐’고 묻는 다른 이들에게 그들은 인터넷에서 봤다는 한국의 데모영상을 보여주려 했다. 한 독일인이 “난 안 볼래. 때려 부수고 불 지르며 피 흘리는 잔인한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아”라며 고개를 돌렸지만, “이건 그런 데모가 아니야”라며 100만이 훌쩍 넘는 촛불물결 영상을 나누어 보는 독일인친구들의 모습을 지켜보게 됐다. 고개를 돌렸던 친구가 “The Art of Demonstration!(데모의 예술이네!)”라고 외쳤다. 내가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도 부상자도, 연행자도 없고, 거리에 쓰레기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덧붙이자,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촛불집회를 하고 있는 한인들

법원, 무죄선고 했으나 불프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는다”며 사퇴


한참을 광화문의 ‘예술데모’를 감상하던 한 독일인이 “국민들이 이토록 그녀를 원치 않는데,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 솔직히 의미가 없는 것 아니니?”라고 물었다. 이들은 사임한 독일의 전 대통령이야기를 꺼냈다. 2012년 독일의 크리스티안 불프(Christian Wulff) 전 대통령이 사퇴했다. 독일의 대표적인 맥주페스티발에 놀러 온 그의 약 90만원짜리 호텔방이 문제였다. 그의 친구가 호텔비를 내줬다는 의혹이 일자, 독일국민들은 직권남용이라며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것이 부끄럽다”는 여론을 형성했다. 분노한 독일인들이 그의 행적을 쫓았다.

그의 아내가 0.5%의 자동차 리스 할인을 받았다는 의혹, 그의 아들이 자동차딜러에게 한화 5만원 상당의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 받은 의혹이 드러났다. 추가비용 없이 비행기 일등석을 이용한 의혹까지 일자 불프는 곤혹스러운 지경에 놓였다. 게다가 총리 재직 시절에 주택 구입을 위해 기준 금리보다 1% 낮게 사업가인 지인에게 대출을 받았는데, 이를 보도하려는 언론사에 전화로 압력을 가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한국인인 나의 시각으로는 ‘털어서 먼지를 낸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독일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독일을 대표하는 이가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고, 국민의 85%가 그의 사퇴를 요구했다.

약 5년이 지난 지금도 ‘친구에게 돈도 못 빌리냐’는 대통령의 발언이 독일인들을 화나게 만든다고 했다. 검찰의 수사 끝에 2년 뒤 그는 향응수수와 직권남용에 대해 무죄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2012년 2월 불프 전 대통령은 “독일국민은 신뢰받는 대통령을 원하고, 국민들은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며 사퇴했다.

프랑크푸르트 한인 300여명 촛불집회

2016년 지난달부터 매주 토요일, 독일인들은 해외뉴스로만 듣던 한국인들의 촛불집회 소식을 독일에서도 접하게 됐다. 프랑크푸르트 촛불집회 현장에도 300여명의 한인들이 촛불을 밝힌 것이다.

집회에 나온 중국인 유학생인 루오(Luo) 씨는 “살수차로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쏘며 과잉진압한 한국소식을 중국언론과 영국언론을 통해 알고 있다. 한국인들의 촛불집회에서 이상징후가 보이면 후에 증언하기 위해 이 집회를 지켜보러 나왔다”고 했다. 독일인 교수인 귄터(Günter) 씨는 “개인의 의견을 밝히고 집회에 참석했다고 해 불이익을 받게 되면 반드시 말하라. 기꺼이 돕겠다”며 개개인의 발언을 통제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강조했다.

지난달 12일 프랑크푸르트 촛불집회에는 서독의 전 총리였던 헬무트 콜(Helmut Kohl)의 아들인 발터 콜(Walter Koh)이 참석해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냉전의 시대 끝에 동서독의 통일을 이끌어 낸 총리이자 민주적인 투표로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총리였던 콜 총리 부자의 염원도, 광화문 앞의 일렁이는 백만여 촛불파도의 염원도, 또 그것을 바라보는 민주주의 국가 독일인들의 염원도 같았다.

독일인들은 90만원 호텔방 때문에 덜미가 잡힌 대통령을 사퇴시킨 독일국민으로서 한국의 박 대통령 뉴스가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은 독일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독일의 민주주의도 오랜 시간 혼란스러운 역사를 거듭하며 국민들이 단합하고 감시하며 이끌어 왔노라며,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평화적 예술시위를 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한국인들이 새 역사를 쓰고 있다고 했다. “세상에 나오려는 또 하나의 강대국 태동이 매우 흥미롭고 자랑스럽다”며 한국의 민주주의를 응원하고 있다.

정은비 시민기자 (베를린·타악기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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