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세계화’ 꿈꾸는
김진묵음악평론가

음악은 상당히 보수적이며 계층적이다. 향유하는 자들이 철저히 계급적이었기 때문이다. 작년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를 휩쓸며 그의 연주회 티켓이 몇 초만에 매진됐다는 뉴스가 있었다. 클래식이 많이 대중화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클래식은 복잡하고 어려운 음악이다. 계급적인 것은 우리나라 음악도 만만찮다. 궁중에서 제사나 조회, 연회 때 쓰이던 궁중음악과 일반 백성들이 부르던 민요가 달랐다. 트로트는 민요에서 신민요, 가요로 변화되면서 등장한다.

“트로트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음악이니까. 물론 모든 음악이 좋지만 우리 노래라는 것. 저는 클래식 평론가로 데뷔했고, 음악을 아우르는 작업을 많이 했는데 의식 가장 깊은 곳에는 트로트가 있었어요. 트로트는 우리 국민의 정서에 가장 잘 맞는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제1호 클래식음악 평론가이자 음악감독인 김진묵(64세) 씨. 요 몇 년 사이 그가 애정을 쏟고 있는 분야는 트로트다. 그가 진두지휘하는 김진묵트로트밴드의 가을 정기공연 <가을소나타>가 지난달 26일 KT&G상상마당에서 열렸다. 2013년 9월 춘천시교향악단과 트로트 춘천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이래 크고 작은 공연만도 8번째다. 클래식, 팝, 메탈, 록, 재즈, 인도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렵한 그가 왜 트로트에 매료된 것일까. 그의 답은 명료했다.

“음악을 듣고 눈물 나는 건 트로트가 거의 유일했어요. 저는 트로트가 최고라고 얘기하지는 않아요. 다른 거죠. ‘봄날은 간다’,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을 작곡한 박시춘을 좋아하는 데 모차르트나 바흐에 결코 뒤지지 않아요.”

우리 아버지의, 사촌누이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힘든 노동 끝에 목젖을 타고 내리는 소주의 알싸함처럼 역사도 유행도 돌고 돌 듯 트로트도 고급 마니아가 찾아 듣는 음악이 될 것이라 예언한다.

록을 편곡해 졸업무대에 올렸다는 이유로 10년만에 중앙대 작곡가를 졸업한 그는 클래식음반사로 유명한 성음사에 취직한다. 클래식 음반기획을 담당하면서 일약 음악계의 주목을 받는다.


“출근하면 유럽이나 외국에서 통관돼 온 음반이 책상에 쌓였어요. 스피커 좋은 턴테이블이 있었는데 하루 종일 그걸 듣는 게 일이었죠.”

‘오타쿠’였던 그는 회사 창고의 음반을 발견했을 때 ‘소름이 쫙쫙 돋을’ 정도의 전율을 느꼈다. 일요일도 반납한 채 음악을 들었다고 한다. 음반 소믈리에(?)는 1984년 창간한 공연예술 전문지 <객석>으로 옮겨 기자로 활동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음악가는 서울대 교수부터 예원예고 학생들까지 다 만나봤죠. 그게 지금까지 나의 든든한 데이터베이스죠.”

몇몇 마니아층만이 즐기던 이름조차 생소한 재즈를 <객석>에 처음 기사를 올린 것도 그였다. 당시 성음사의 입사는 평론가로 데뷔하는 통로였다. 이후 객석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음악에 관한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충만한 상태가 된다. 차면 흘러넘치듯 비울 때를 알았을까. 홀연히 인도로 떠난다. 1년여 세계 곳곳을 방랑하다 1990년 12월 춘천 북산에 60만원짜리 집을 산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곳에 살겠다고 결심했어요. 언어와 친구가 없는 외국은 안 되겠고, 세상 복잡한 서울은 더더욱 안 되겠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오지로 가겠다고 생각했죠. 오항리에서 북산까지 두 시간이 걸렸을 때거든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음악에 단련되었을 그의 귀가 산골의 적막함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그러나 그의 산골은 조용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

“오후 네 시가 되면 피부가 아려요. 너무 외로워서, 봄이 되면 새벽에 잠을 못 자요. 창밖에 봄의 페스티벌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땅을 뚫고 나오려는 생명이, 꽃망울 터지려는 에너지가 느껴져요. 오~ 뇌가 터질 듯한 행복, 겨울을 이겨낸 생명체가 부들거리며 떠는 데 정말 행복하죠.”

서너 살 무렵부터 굿당에서 벌어지는 진동과 고등학교 군악대 북소리에 홀렸던 그가 생명의 소리를 흘려버리지는 못했을 터. 추곡터널이 생기면서 새가 없어져 아쉽다는 그는 남쪽의 무인도에서 1990년대 그를 흥분케 했던 새소리를 찾았다고 한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가게 둬요. 욕심이라면 트로트의 세계화. 외국인들도 우리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하는 거죠.”

트로트밴드는 2002년 기독교방송 30주년 기념공연 때 독일 재즈그룹인 산타첼로에게 트로트를 시키면서 결성하게 됐다. 무대에서 그는 베이스 클라리넷과 테너 색소폰을 멋들어지게 불러 관중들의 환호를 듣는다. 나이 60이 넘어 ‘귀가 좋아져’ 연주를 잘하게 됐다는 그의 말이 농담처럼 들린다.

“예순이 되면서 저 자신한테 ‘너 뭐할래? 하고 싶은 게 뭐야?’라고 물었죠. 그랬더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겠다’는 답이 나오데요? 어렸을 때 삼촌이 불던 하모니카가 생각났죠. 그래서 베이스 클라리넷을 샀어요. 재미로 동네서 콘서트 하다가 무대에까지 서게 된 거죠.”

그는 자신의 평균수명을 130세로 본다. ‘픽’ 웃었더니 정색하며 웃지 말란다. 2050년 구글이 죽음에 도전해 게놈지도가 바뀌면 더 이상 인간은 노화나 병으로 죽지 않는 세상이 온다는 미래학 분야를 설명한다. 이제부터 현역 연주가로 뛸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예삿말로 들리지 않는다. 김진묵트로트밴드는 춘천서 하는 정기공연 외에 서울과 지방은 물론 외국을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할 계획이다.

요즘 그는 ‘내 인생과 내 관점에서 보는 클래식 음악에 관한 책’ ≪클래식에 입 맞추기≫(가제)교정 일에 매달리고 있다. 다음 달 초쯤 발간예정이다. 기존에 나왔음직한 내용은 배제된, 김진묵에 의해 새롭게 쓰인 날것이다. 그의 날것은 어떤 것일지 클래식에 입 맞추는 날이 설레게 기다려진다. 생각이 원만해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는 이순의 나이. 그의 자유로운 날개가 더 활짝 펼쳐지길 바란다.

김정운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