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없이 삶은 계란을 먹은 듯 가슴이 갑갑하다. 속 허하기가 태평양 같다.

‘물고기는 머리부터 썩는다’는 서양 속담이 있더니! 온갖 부패부정은 꼭대기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딱 맞았다. 그 국정농단, 직권남용, 이권 챙겨주기….

제목: 하야 기원탑
크기: 240*400cm
재료: 신문. 인쇄물 가변설치-2016
<순실뎐> 출품작

아. 이 무쇠 티끌이 섞인 것보다 더 숨 막히는 박근혜정권의 공기여!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아닌가. 그간 얼마나 무시했으면 국민들이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송곳니가 방석니 되도록 이를 갈며 촛불을 들고 광장을 덮겠는가.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나뭇잎이 오히려 가라앉고 돌멩이가 물에 뜨는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듣자니 박근혜 대통령은 가장 닮고 싶은 인물로 저 옛날 ‘세계의 바보’라고 놀림을 받았던, 영국을 반듯하게 강대국으로 이끈 엘리자베스 1세를 꼽았다고 한다. 허허, 참! 동헌 기둥에서 새싹나기를 기다리고, 장대로 하늘의 높이를 재는 게 빠르지 지나가던 황소가 웃을 일이다. 지도자로서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그냥 엘리자베스 여왕의 일화를 반추해 보겠다.

1588년 7월 19일 약 130척의 함선으로 이루어진 에스파냐의 무적함대가 영국해협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군이 방어에 나설 때 엘리자베스는 안전한 런던에서 몸을 사리고 있는 대신, 군대의 대부분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주둔하고 있는 틸베리로 갔다.

여왕이 주둔지로 들어오자 전 군이 무릎을 꿇었다. 엘리자베스는 그 광경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 어느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막사 안에서 장군과 함께 식사를 했으며, 이튿날 한 기병대 장교의 흉갑을 빌려 입고 ‘빛나는 천사 같은 차림’으로 말을 탄 채 행진했다고 한다.

전쟁이란 당연히 사기가 관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해 영국의 압도적 승리였다.

‘혹시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 대통령도?’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자. 입이 마르고 닳도록 외쳤던 ‘국민’과 ‘섬김’의 결과를 보라. 봇짐 내어주며 앉으라고 한다더니 속과 겉이 달라도 너무나 다르지 않았던가. ‘입에는 꿀을 바르고, 가슴에는 칼을 품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대들보가 썩었는데 서까래만 고쳐서야 집이 온전히 다시 서겠는가. 꽃은 시들기 전까지가 꽃인 것이다. 끈 떨어진 꼭두각시 신세로 정치생명을 연장해 보았자 추태만 보탤 뿐이다. 썩은 나무는 다듬을 수 없는 것이다. 아, ‘지도자를 잘못 뽑는다는 것은 마치 옷을 짓는 재봉사를 불러다 대문을 고치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중국학자 보양)고 하더니! 그렇다면 지금의 시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갑자기 미국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얘기가 생각난다. 어느 정치 동료가 트루먼 대통령에게 책상 위에 놓을 명패를 선물했다고 한다. 거기에 적힌 글귀는 이랬다.

“내가 모든 책임을 진다!”

잘못은 다 남이 했다고 발뺌하고 회피할 게 아니라 당당히 책임지고 부디 물러나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여름의 들판처럼 푸르고 건강해질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그렇게 만들 것이다!

이광택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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