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도시의 얼굴이다. 그래서 가끔 간판을 정비한다는 행정조치들이 구상되곤 한다. 조경을 공부한 관계로 춘천을 비롯해 강원도의 많은 지역에서 간판을 정비한 사례를 보고 듣고 때로는 심의위원으로 참여도 했다. 특히 심의는 많은 경우 이미 정해진 틀 안에서 디자인의 가부만을 정하는 것이어서 항시 미진하고 심지어는 왜 이런 사업을 하느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언젠가 강원도에서도 오지로 알려진 곳을 지나칠 때 본, 간판이 정비된 거리의 모습에서 받았던 기억은 꽤나 썰렁한 것이었다. 거리는 마치 서부영화 ‘황야의 무법자’의 배경과 같은 이국적이고도 황량한 느낌을 주었다. 익숙한 한글조차도 무슨 로마자 알파벳 같았다. 주변 지형과도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 다시 지나칠 적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간판들은 모조리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다른 한 지역, 별것도 아닌 듯한 품목이 전국적으로 이름이 난 곳이다. 가끔은 그곳을 지나치며 한 상자씩 사들고 오는 정겨운 먹거리인데, 어느 날 간판을 정비한다고 그 품목을 연상시키는 하나의 틀로 모든 간판을 정비했다. 세탁소도, 약국도, 옷가게도, 식품점도 모두 한 가지로 틀 지웠다. 거리의 풍경을 보며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지역의 수준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풍경이 연출된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서 외지에서 방문한 사람들이 받은 인상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강원도의 수준으로 인식하지 않기를 마음으로 바랐다.

춘천의 경우는 좀 나을까 싶지만 사실은 매한가지다. 아직도 어느 한적한 곳, 한 구석에 남아있는 물의 도시를 상징하는 간판 디자인의 틀을 적용한 간판을 볼 수 있다. 그 간판 정비를 위한 디자인 심의에는 나도 참석했다. 물의 도시 춘천을 형상화한 디자인을 간판의 틀로 정한 상태에서 그 내용을 심의하는 자리였다. 기억으로는 수천만 원의 비용을 들여 디자인 한 것이었다. 이런 일을 왜 하느냐고 꽤나 강하게 의견을 제시했지만 논외의 사항이었다. 그 후 춘천의 간판정비 심의회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춘천시의 간판과 관련된 회의에 참석한 기억은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간판의 틀을 적용한 간판은 시행한 지 2~3년만에 흐지부지 사라졌다. 쓰지 않았어야 할 세금이 날아가고, 간판을 새로 만드느라 아까운 재료만 낭비된 것이다.

간판을 정비하는 일을 지역마다 행정차원에서 시행해 오고 있지만, 여전히 도시경관에서 간판이 긍정적으로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적인 측면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건물의 외벽 전체 혹은 절반 가까이 도배한 듯 부착된 층별 안내 간판들은 밤에는 더 강렬한 원색의 조명으로 인해 현기증을 일으키며 혼란스럽게 한다.

내 땅과 내 건물에 내 돈을 들여서 하는데 무슨 간섭이냐고 하겠지만, 우리는 함께 살고 생활하는 도시는 모두가 공유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을 아름답게 만들자고 하는 것은 그 공간 안에서, 즉 춘천이라는 도시구역 내에 생활하는 우리 모두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일상생활 속의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생활 속에서 힐링(healing)이 되는 것이다. 간판만 정비된다고 해도 도시경관은 눈에 띄게 좋아질 수 있다.

도시경관에서 간판을 정비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겠지만, 한두 가지 원칙만을 제시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간판은 1점포 당 최대 2곳에만 설치할 수 있다. 간판의 크기는 몇 평방미터라는 규모로 한정한다. 사용하는 색채는 구급시설 이외에는 원색 사용을 금지한다. 그리고 일체의 예외를 두지 말자. 특히 스티커 형식, 기둥과 문과 유리창에 붙이는 메뉴도 배제하자. 간판은 단순 명료하게 할 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더욱이 한 번 들어와 보라고 손짓을 하기까지 한다.

박봉우 (강원대 명예교수·숲과문화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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