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경동


스물 여덟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 하지 않겠냐고 찾아왔다
얘기 말엽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요?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유리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 하지 않았다
십수 년이 지나 요 근래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으며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 있고
걷어 채인 좌판,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박근혜 게이트로 조기 대선이 치러질 모양이다. ㅇㅇㅇ 대선 후보 지지 조직에 합류해 달라는 요청을 몇 번 받았다. 어느 대학 출신이냐고 묻진 않았지만 나는 나 같은 무명 예술가가 무슨 힘이 되겠냐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조국해방전선에서도 학력을 따지나 보다.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인 시인에게 쳐진 ‘싸늘하고 비릿한 유리막’이 어떤 건지 가방끈 짧은 나는 안다. ‘어느 대학 출신이요?’ 나도 더러 들었던 질문이기 때문이다. 학력보다 실력을 알아주는 세상은 요원하다. 어쩌면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력이 있으면 시인처럼 당당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대학을 나오고 조직에 들어간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들에 가입되어 있고,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바람에 선동 당해,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에 서 있는 민중들이 세상을 바꾸는 거다. 시인의 항변이 눈물겹다. 암튼 이번엔 대통령 잘 뽑아야 한다.

정현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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