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하면서도 영양이 가득한 달걀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다. 반찬하기 싫은 날, 반찬이 없는 데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날 김과 달걀이 있으면 걱정이 없다.

방금한 밥에 반숙 프라이를 올리고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벼 김에 싸 먹는 달걀밥, 송송 썬 파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해 부드럽게 먹는 달걀찜, 냉장고 속 자투리 채소를 넣고 목도리처럼 둘둘 말아 푸짐히 먹는 달걀말이. 짭짜름한 구운 김에 고소한 달걀반찬은 가짓수의 빈곤함을 잊게 하는 충만함이 있다. 이렇게 착한 달걀이 요즘 난리다. 입이 쩍 벌이지게 비싼 값에 판매도 1인 1판 한정이다.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온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미국산 하얀 달걀 역시 비싼 몸값으로 마트 진열대에 올라왔다. 하~ 어지러운 시국에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돼 대체 이 지경일까?

2016년 11월 16일 전남 해남과 충북 음성에서 최초 신고가 접수된 이후 조류인플루엔자(AI)의 빠른 확산이 재앙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22일까지 국내 가금농가 사육 마릿수의 19.8%에 해당하는 3천259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땅에 파묻혔다. 특히 산란계(알 낳는 닭)의 피해가 심각한데, 전체 사육규모의 33.2%에 해당하는 2천321만 마리가 살처분됐으며, 번식용 닭인 산란종계는 절반 이상 사라져 생산기반 자체가 붕괴 위기라 한다.

이번 H5N6형 AI는 변종바이러스로 2014년 중국, 라오스 및 홍콩 등 아시아 지역에서 유행했으며, 지난해 11월 기준 중국에서 16명이 감염돼 그 중 10명이 사망했다. 현재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파된 적은 없으며 감염된 조류를 만지는 등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서만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AI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규모가 1조원에 이른다 한다.

첫 신고 후 한 달이 지나서야 범정부 차원의 관계장관회의가 첫 소집됐고 3일 후 AI위기경보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조정될 때엔 이미 2천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던 사이 달걀수집상들이 하루 한두 차례씩 농가를 들락거리며 AI바이러스는 전국으로 전파됐고, 평소 위생과 방역이 열악한 축산농가의 환경이 확산을 부추겼으리라. 위기경보가 내려진 후에도 전례 없는 규모로 발생하면서 처리 인원이 부족해 완전한 방역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테고, 24시간 내 살처분 원칙도 며칠씩 지연되면서 더 빠르게 퍼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살처분이란 가축으로부터 감염병이 발생했을 경우 병의 전염을 막기 위해 일정한 반경 내의 가축들을 도살하는 것이다. 보통은 경제적인 이유로 생매장을 택하고 있는데 이산화탄소(CO2) 가스로 가금류를 안락사 시킨 뒤 매립이나 소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정부는 ‘보호지역’으로 불리는 발생농장 반경 500m~ 3km 내에서도 AI 발생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선제적 조치’라는 명목 하에 예방적 살처분을 하고 있다. 살처분과 소독만으론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미 토착화된 가축 전염병이라면 공장식 사육을 지양하고 동물의 면역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다음 상시적인 차단방역에 집중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 아닐까?

태풍이나 풍수해로 농작물 피해를 입어도 시름이 가득한데, 살아있는 닭이나 오리를 생매장 한다는 건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다. 인간의 안전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생명이 온전한 동물을 생매장 한다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 누구에게든 묻고 싶다. 1인 1닭을 향한 식욕, 인간과 자본 중심의 정책이 만들어 낸 이 재앙이 어서 잦아들기 소망한다. AI바이러스는 섭씨 75도 이상에서 5분 이상 가열하면 안전하므로 닭과 오리는 충분히 익혀 먹고 달걀은 노른자까지 반드시 익혀 먹기를. 그리고 철새도래지의 여행은 잠시 미루고 손은 자주 깨끗이 씻기를 주문한다.

채성희 (슬로푸드한국협회 지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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