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세속을 벗어나고자 한다. 세속에는 많은 사람이 부대끼며 살기에 언제나 비리가 있고 다툼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다툼은 내려다보지 못하고 치올라 보며, 멈추고 버리기보다는 남보다 빨리 올라가고 많이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온다. 이 때문에 우리는 참 힘든 삶을 산다. 만족은 있을 수 없고, 불만이 가슴 한편에 쳐 박혀 나를 움직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다가 죽는다.

쌍무지개가 핀 대곡리 

스스로 판단해서 치열하게 살았다면 굳이 뒤돌아 볼 필요까지야 없지만, 잠시 발길을 멈추고 내 삶의 주변을 자세히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우리가 치열하게 살면서 지나쳤던, 나를 풍족하게 해줄 아주 중요한 어떤 것들을 말이다. 더 멀리 본다면 세속의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내고 깨끗한 자연의 세계로 가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춘천에 그런 이상향이 있다. 바로 육지 속의 섬인 터일이다. 터일은 넓은 벌판에 있는 터라고 해서 불린 마을이름이다. 바로 북산면 대곡리(垈谷里)다. 넓은 벌판을 자랑하던 마을은 1972년 소양호 속에 잠겼다. 낮은 지대는 아틀란티스처럼 온 마을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용궁이 된 것이다. 고향의 터전이 물속으로 들어가 용궁이 되자 사람들은 실향민이 되었다. 그래도 높은 곳은 남았으니 참 다행이다.

모두 실향민이 되어 떠나는 중에도 얼마 안 되는 고향터전을 지키며 터일 사람들은 살고 있다. 터일 사람들은 주로 장뇌삼과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수몰지구가 되자 처음에는 복숭아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마을이다 보니 운반이 문제였다. 춘천까지 수확한 복숭아를 운반하기 위해서는 무려 5번을 배(船)와 차로 싣고 내려야 했다. 복숭아는 상처가 나서 멍들어 상품가치를 잃었다. 그 대안으로 심은 것이 사과나무였다. 소양호 주변은 겨울철 아무리 추워도 온도가 많이 내려가지 않았다. 게다가 소양호에서 햇빛이 반사돼 사과가 골고루 익었다. 지형의 특성을 활용한 작물을 개발한 것이다.

대곡리마을과 계명산과 다람쥐섬

또 하나 대곡리가 육지 속의 섬마을이 되면서 생긴 특성이 있다. 마을 앞산이 소양호 물에 둘러싸여 온전한 섬이 된 것이다. 마을 가운데 있어서 중뫼산이라 했는데, 지금은 다람쥐섬으로 불린다. 산이 섬으로 바뀐 것이다. 오래된 얘기지만 증언에 의하면, 강원도개발공사가 이 섬에 다람쥐를 키워서 수출을 하려 했다. 4년 동안 키워 3천500마리를 생산했는데, 너무 덩치가 큰 바람에 한 마리도 수출을 못하고 말았다.

터일은 소양호에 물이 차기 전에는 인제부터 소양강을 따라 서울까지 이어지던 수로였다. 뗏목이 내려가고, 소금배가 인천에서부터 올라왔다. 그때 아주 유명한 폭포개울 중 하나인 포아리 또는 포와리가 있었다. 일종의 직탕폭포였다. 인제에서 내려오는 뗏목이 가장 힘들었던 곳이었다. 그 때문에 ‘뗏목아리랑’에 “쾌괭이, 포와리 다 지나니, 덕두원 썩쟁이가 날 반기네”라는 구절이 있다. 쾌괭이도 뗏목이 내려오기에 힘든 여울이었다. 힘든 물살을 지나 뗏목을 매어두고 덕두원 주막에 들러 하룻밤을 머물렀다. 당연히 주막의 여인들이 반길 수밖에 없다.

터일에는 아침 희망을 알리는 닭 울음의 산이 있다. 한자로는 계명산(鷄鳴山)이다. 올해가 닭띠 해 정유년(丁酉年)이니 관련이 있다. 산의 형세가 닭이 울 때 날개를 벌리는 모양이란다. 임진왜란 때 남철산(南哲山) 장군이 있었는데, 왜군의 침략을 막으려고 계명산 산신께 산신당을 지어놓고 말을 만들어 바치고 기도를 했다. 산신은 무수히 많은 팥을 군사로 변하게 했고, 남철산 장군은 군사들과 힘을 합쳐 왜군과 싸워 전공을 세웠다. 장군을 시기하는 무리들 때문에 처형을 당해 중뫼산에 묻혔는데, 다람쥐 섬 꼭대기에 있는 무덤이 그 무덤이다. 언젠가는 계명산이 울어 홰를 치면서 다시 일어날 것이다. 진정한 이상향을 만들려고 터일 사람들은 지금도 남철산 장군을 이야기한다.

빠른 시기에 터일 사람들의 바람처럼 이 세상은 비리와 불합리가 없는 정말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게다. 평화롭고 잔치하는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고 금은보화가 즐비한 용궁의 꿈이 이뤄질 것이다. 배를 타고 소양호를 가르며 터일로 향하면 진정 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학주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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