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서 화천으로 북한강 벼룻길을 오고가는 네 번째 4월을 맞는다. 그 첫 해. 동거차도 앞 바다에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그 날의 일기. “이 참담함을…나는 오늘 비로소 국가를 버린다. 내 국가는 내 앞의 아이들이다. 그들이 내 공경의 대상이다. 그뿐이다. 먼저 간, 별이 된 아이들. 아이들아 미안하다. 부디…”(2014. 4. 16.)

당시 나는 고2 담임을 맡고 있었다. 아이들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날들이 이어졌다. 강변길 벼랑에는 한참 진달래가 피어나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얼핏얼핏 수줍게 스치는 진달래 무더기를 보면서 강안으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젖어드는 세월이었다.

1년만에 강 건너로 학교를 옮겼다. 다시 맞이한 봄날의 일기. “안개 속으로 꽃 피고지고, 피고지고, 피고지고 지워져갔다. 죽은 자들과 살아있는 자들이 눈물을 섞어온 날들. 잔잔한 바다보다 폭풍이 이는 바다를 더 사랑해보지도 못하고. 피어보지도 못하고. 더러운 나라를 떠난 아이들아. 너희들과 남겨진 이들의 눈물이 온 산천을 씻어내는구나. 맹골수도 너희들 발목을 적시던 삼백예순날의 눈물. 그 눈물의 힘겨운 힘으로 필경 세월호는 건져 올라온다. 그날의 눈물은 와락이고 벼락이며 찬란이리라. 다시 시작하는 삼백예순날. 산 자들이 목숨을 거는 오늘.”(2015. 4. 16.)

여전히 아이들 앞에 서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일을 그만두겠다는 생각만이 앞섰다. 유가족들이 삭발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또 한 해가 흘렀고 세 번째 봄을 맞았다. 생명을 버린 세월호는 여전히 동거차도 앞 차가운 바다 속에, 목숨을 걸고 참사의 원인과 책임자 처벌을 원하는 이들은 철저하게 길가에 버려졌다. 세 번째 그 날의 일기다. “학교 연못가에 수선화가 피었습니다. 노란 리본을 닮았네요. 늘 노란 리본과 함께합니다. Remember0416.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들이 합당하게 심판을 받는 날까지 그렇겠지요. 수선화가 수줍게 피어나는 찬란한 봄날이 세월호와 함께 눈물입니다.”(2016. 4. 16.)

상식적인 것이라곤 티끌만치도 보이지 않는, 도무지 경우가 아닌 것들만 가득한 세상. 비극 앞에서, 참사 앞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대략 이런 것뿐.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난겨울은 몇 번을 촛불을 든 이들의 바다에서 둥둥 떠다녔다. 거짓으로 시작해 거짓으로 끝장을 보던 이들의 가면이 하나둘 벗겨지기 시작했다. 거짓의 정점에 있던 이가 자리에서 쫓겨나자마자 거짓말처럼 세월호가 떠올랐다. 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바다 밑에 누워 있던 세월호를 끌어 올린 것은 지난 3년의 잔인했던 4월과 광장의 촛불들이 흘린 눈물의 힘이었다. 춘천에서 화천으로 이어지는 북한강 벼룻길 녹수청산 화엄세상 5월을 기다린다. 5월, 그날이 오면,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가장 많이 아픔을 나누고 눈물을 흘린 이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라면 결코 길가에 버려져 촛불을 들었던 수많은 이들의 희망을 잔인하게 짓밟지는 않을 것이다.

김재룡 (화천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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