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우리 고향 마을에 처음 전기가 들어올 무렵

                                                                                                                 송찬호


마당가 분꽃들은 노랑 다홍 빨강 색색의 전기가 들어온다고 좋아하였다
울타리 오이 넝쿨은 5촉짜리 노란 오이꽃이나 많이 피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닭장 밑 두꺼비는 찌르르르 푸른 전류가 흐르는 여치나 넙죽넙죽 받아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가난한 우리 식구들, 늦은 저녁 날벌레 달려드는 전구 아래 둘러앉아 양푼 가득 삶은 감자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해 여름 드디어 장독대 옆 백일홍에도 전기가 들어왔다
이제 꽃이 바람에 꺾이거나 시들거나 하는 걱정은 겨우 덜게 되었다
궂은 날에도 꽃대궁에 스위치를 달아 백일홍을 껐다 켰다 할 수 있게 되었다

                                                                           《고양이가 돌아오는 아침》
                                                                                  문학과지성사, 2009.
 

시를 이렇게 맛있게 써도 되는가.

송찬호 시인은 마당가 분꽃에 형형색색 전기가 들어온다 했다. 5촉짜리 오이꽃이니, 찌르르르 전류가 흐르는 여치라니!

그리고 가난한 식구들은 양푼의 감자를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는,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 연상되는 그 서러울 듯한 분위기가 슬프지 않다.

그리고 여름 백일홍에도 전기가 들어오고, 바람을 덜 걱정하고, 궂은 날에도 꽃대궁에 스위치를 달아 껐다켰다 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기발한 발상이고, 재미있는 비유이고, 자유로운 연상인가.

아무튼 실로 재미있고 유쾌한 시다.

조성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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