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음식 중 최고의 맛은 무엇일까? 물론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불고기, 비빔밥 정도를 대표음식으로 꼽는다. 하지만 한식 전문가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들에게 한국인의 음식 중 최고는 ‘밥’이다. 밥이 맛있으면 다른 반찬이 별로 필요 없다. 한식을 아는 사람들이 밥에 정성을 기울이는 이유가 그것이다.

밥맛을 아는 사람들은 쌀을 살 때 꼭 품종을 확인한다. 품종에 따라 밥맛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벼 품종개량 기술은 세계적인데, 벼 품종개량의 시초인 1906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품종개량 된 벼는 모두 200여종이다.

벼 품종개량의 목표와 방향은 그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초기부터 약 1970년대까지는 다수확을 목적으로 품종개량이 이루어졌다. 그 핵심에는 통일계통의 여러 벼들이 있었고 이들은 식량자급의 신화를 이루어낸 주역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말의 도열병 사태, 1980년대 초의 냉해로 인해 통일계 품종들의 약점이 알려지면서 1992년의 ‘용주벼’를 마지막으로 이 땅에서 더 이상 재배되지 않았다. 이후 벼의 품종개량은 ‘밀양23호’를 시작으로 밥맛 향상을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때가 우리나라 벼 품종개발의 황금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70년대 초, 일본에서 들어온 ‘아끼바레’(추청벼)에 뒤지지 않기 위해 다양한 품종이 대량으로 개량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안’, ‘백진주’, ‘삼광’, ‘칠보’, ‘고품’, ‘운광’, ‘태봉’, ‘신동진’ 등의 고품질 벼가 쏟아져 나왔고 그 중에서 일본의 ‘고시히카리’보다 맛이 우수하다는 ‘일품’이 주목을 받았다.

지역별로도 재배하는 벼가 약간씩 다르다. 충남과 전라도의 곡창지대에서는 밥맛이 좋고 내병성이 강한 ‘호품’이 많이 재배되고, 영남지역에서는 주로 ‘운광’이 재배된다. 강원도와 경기도는 우리에게 익숙한 ‘오대’, ‘수라’, ‘삼광’이 주로 재배된다. 최근 쌀 소비량이 급속히 감소됨에 따라 품종개량은 방향도 많이 바뀌고 있다. 이전의 다수확이나 미질이 아니라 기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흑진주’ 등의 유색미, 라이신 함량이 많은 ‘연안벼’, 식이섬유가 일반 쌀보다 3배 이상 많은 ‘고아미2호’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쌀이 나오기까지 그들의 산모역할을 한 것은 우리나라 토종벼다. 우리나라 토종벼는 알려진 것만 해도 350여종이 넘는다. ‘흑조’, ‘흑갱’, ‘대추찰’, ‘용정찰’, ‘장기찰’, ‘다마금’, ‘버들벼’, ‘녹두도’, ‘쇠머리지장’ 등 그 이름도 특징도 다양하다. 놀라운 것은 토종벼는 ‘흑갱’이나 ‘자광’처럼 유색미가 많다는 것이다. 토종쌀을 모아보면 오방색이 된다고 한다. 특히 각 지역마다 다른 품종이 재배되었는데 이는 우리의 입맛이 지금처럼 천편일률적으로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초 서울 불광동 혁신파크에서 ‘토종쌀 테이스팅 워크숍’이 열렸다. 전국에서 소농들이 조금씩 재배하던 토종쌀을 한데 모으고 토종쌀로 지은 밥과 현대인의 입맛에 맞춘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행사였다. 이 행사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토종벼를 재배하고 확대하기 위한 가능성의 타진이었다. 토종벼를 일반 농부들이 재배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다른 토종작물과 마찬가지로 토종벼의 재배는 지역의 소농이나 도시농부들에게 달려 있다.

도시농부들의 특징은 집에서 먹는 몇 가지 채소만을 재배한다는 것인데, 이제는 채소만을 재배할 것이 아니라 몇 십 평에서 백 평 정도의 작은 단위로 토종벼를 재배하는 운동이 확산되어야 한다. 특히 이를 위해 도시농부들의 공동체가 결성되어 공동체별로 다양한 토종벼를 재배하는 것이 좋다. 또한 지역별로 재배한 토종쌀을 서로 나누는 행사를 정기적으로 열어 다양한 토종벼의 가치와 맛을 회복하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춘천토종씨앗도서관의 다음 목표는 토종벼의 재배와 확산이 아닐까 싶다.

김태민 (춘천토종씨앗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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