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독점하는 특별한 몇 사람이 빛나는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났다. 뛰어난 한 사람의 지도자가 필요한 시대도 아니다. 지식의 민주화와 집단지성의 리더십이 발휘되는 시대가 되었다. 어떤 문제를 잘 풀어갈 수 있는 몇 가지의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것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되었다. 시시때때로 직면하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역량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설문조사

이러한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을 교육하기 위해 지식을 저장하는 것보다는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자각에서 거꾸로 교실, 메이커 운동, PBL(project based learning)수업과 같은 방법론이 제안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적인 교수법을 현장에 적용하는 일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전인학교는 올 한 해 에너지라는 대 주제를 놓고 논술·사회·과학교과를 통합적으로 연계하는 교육과정을 전개하고, 그 수업의 연장선에서 탐방 프로젝트를 기획해보기로 했다. 이른바 교과융합 PBL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에너지라는 주제를 다루지만 과학시간에는 전기 에너지와 발전의 과학적 원리를 다루고, 논술시간에는 에너지에 대한 정보를 해석하고 재구성해 토론하고 논술문으로 작성하는 방법을 익히며, 사회시간에는 에너지와 연관된 사회적 쟁점을 알아보고 설문조사나 인터뷰와 같은 조사방법론을 학습하는 방식이다. 한 학기에 걸친 수업의 연장선에서 발전소 탐방 프로젝트를 기획해 3박4일 동안 여러 발전소를 탐방하고 주민들을 만나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시도했다.

이러한 교육과정의 구현을 위해 교사들은 연초에 대강의 방향성을 세우고 수업을 계획한다. 수업은 실제로 진행된 내용을 정기적이고 구체적으로 공유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협의해야만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교사들 간의 협의는 순조롭지만은 않다. 기존에 개발된 사례가 있는 것도,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정교한 설계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게 서로를 위해서 좋다. 자칫 교과 간 통합을 기계식 짜맞추기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틈과 유연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논술시간에 원자력 발전에 대해 찬반토론을 하고 사회시간에 원자력 발전소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지를 작성하는 것, 혹은 프로젝트 기획시간에 여러 가지 발전소에 대해 조사하고 과학시간에는 조사한 내용의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보충수업을 하는 것과 같은 연계는 서로의 수업에 대한 긴밀한 공유, 이른바 협치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탐방을 앞두고 기획을 위해 시간이 모자랄 때는 연관성이 낮은 영어·수학·체육과 같은 타 교과 교사들에게 양해를 구해 해당 수업을 취소하고 시간표를 재배치한다. 수시로 발생하는 문제는 그때그때 함께 풀어나간다는 합의가 있었기에 서로 흔쾌하게 수용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어찌 보면 장님 코끼리 더듬기 식의 모색을 거치며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고서야 비로소 교과융합 프로젝트 수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매순간 그 좋다는 혁신교수법이 생각만큼 보편적으로 보급되기 힘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사전 조사와 기획을 반영한 70쪽 분량의 자료집을 들고 발전소를 돌아본 후 마을 어르신들과 머리를 맞대고 설문조사를 펼치는 장면을 보는 순간, 교사들은 지난 수개월의 시간이 얼마나 값진 실험이었는가를 또한 실감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측면을 보는 눈이 모여 다각적인 측면을 함께 보고, 여러 분야의 전문성이 공유됨으로써 한층 성숙된 리더십이 작동된다. 예측하지 못한 문제에 직면해 해결을 모색할 수 있는 인간을 희망하기에, 힘들고 어렵지만 교사인 우리들이 프로젝트 수업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노경원 (전인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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