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3국의 풍류문화(風流文化)를 생각했을 때 누정(樓亭) 문화만한 것도 드물다. 또한 누정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더라도 상당히 오래된 문화 중 하나다. 한양 도성 안 경복궁의 경회루와 향원정, 창덕궁의 부용정과 애련정·관람정·존덕정 등은 그야말로 왕과 왕족의 연회를 위한 절대공간이다. 그러므로 자연 친화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았을 때, 각 지역의 강과 산에 걸맞게 지어놓은 누정과는 그 규모나 역할에 있어 차이가 크다.

또한 누(樓)와 정(亭)은 규모와 형태에 있어 차이가 있다. 누는 정보다는 크고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통상 기둥만으로 이루어진 빈 공간이다. 반면 정은 누보다 규모가 작고 2층으로 된 경우가 극히 드물게 있지만, 내부는 일체형 공간으로 되어있다.

춘천을 대표하는 누정은 소양정이다. 소양정은 역사적으로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되었으며, 이만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누정도 없었다.

누정이 자리한 곳은 자연경관이 빼어나기에 누정에 오르면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며 세상사의 번잡함을 잊고 한가로움 속에 사색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 아울러 누정은 음주가무와 함께 시를 짓는 풍류문화의 장소이기도 하다. 소양정 관련 한시를 살펴보면 시대인식을 반영한 자기반성과 사색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소양정이 유유히 흐르는 소양강을 바라보며 시대를 아파하거나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는 그런 장소였음을 반증한다.

조선시대 절의를 대표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인 김시습은 <소양정에 올라(登昭陽亭)>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새는 하늘 끝까지 날아가고 鳥外天將盡
시름에 겨워 한(恨)은 그치질 않네 愁邊恨不休
산은 북쪽으로 굽이굽이 돌아나가고 山多從北轉
강은 절로 서쪽으로 흐르네 江自向西流
기러기 내리는 물가 모래톱은 멀고 雁下汀洲遠
배 돌아드는 옛 언덕 아득하구나 舟回古岸幽
어느 때 세상의 법망 벗어버리고 何時抛世網
흥에 겨워 다시 노닐 수 있을까 乘興此重遊


김시습(1435~1493)은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내쫓고 왕좌에 오르자 책을 모두 불태우고 삭발한 채 전국을 방랑하며 절의를 지킨 생육신 중의 한 사람이다. 김시습은 시름과 한스러움을 이기지 못하며 소양정에 올랐다가 자연풍광을 바라보고는 한스럽고 번잡한 세상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찾아와 노닐고 싶은 심정도 고백하였으니, 이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주는 치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소양정은 소양강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봉의산 중턱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어 그 이름뿐 아니라 정자의 기능에 있어서도 간극이 많다. 반면 소양2교 근처에 설치된 소양강처녀상과 쏘가리상, 소양강스카이워크는 위풍당당하게 춘천의 상징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소양정에는 봉의산을 오르는 사람만이 간간히 들를 뿐 찾아주는 이가 없다. 반면에 소양강스카이워크는 준공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곧 100만명을 헤아리기에 이르렀다.

소양강스카이워크를 거닐 때 어떠한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소양강 물위를 걷는 신비로운 매력에 도취되어 잠시나마 세상사 시름과 번잡함을 잊고 자유로움과 신비감을 느끼리라. 이것 또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주는 치유의 선물이다.

스카이워크는 시간적으로 제한된 공간이지만 소양정은 머물며 자연을 감상하고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소양정을 스카이워크 가까운 강가로 옮겨서 상호보완적 치유공간으로 조성한다면 춘천의 문화품격을 높이고, 관광객에게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허준구 (춘천문화원 사무국장)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