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白石, 1912~1996)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작품을 책상유리 밑에 깔아놓고 30년째 읽고 있다. 시가 너무 좋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의 시집 《사슴》 중에서 ‘적막강산’이 떠오른다. 산에 오면 산 소리가 들리고 벌에 오면 벌 소리 들리는데 그의 고향 평안북도 정주(定州)가 왜 적막강산일까를 생각해본다. 그의 고향에 산 소리 벌 소리는 다 들려도 당시는 외세에 침탈된 나라, 제 소리 내지 못하는 나라, 그러니까 적막강산으로 보았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정세도 만만치 않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그야말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나라가 되풀이 되고 있다. 이 시 ‘적막강산’은 백석의 고향찬가가 아니라 이 땅의 비애를 노래한 절규다. 윤동주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백석은 만물이 소생하는 강산에서 진정한 우리의 목소리, 산 소리 벌 소리를 ‘나 홀로’가 아니라 모두 함께 듣고 싶었다. 뻐꾸기, 덜거기, 물닭, 갈새의 소리를!

허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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