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창간호 

《개벽》은 3·1운동이 낳은 잡지라고 할 수 있다. 3·1운동을 주도한 천도교 지도자들이 대부분 투옥되자, 청년들이 그 정신을 계승하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조직을 강화하고 신문화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개벽》은 출판문화의 하나로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벽》은 조선총독부로부터 강제로 폐간을 당하기까지 발매 금지 34회 이상, 정간 1회, 벌금형 1회뿐만 아니라 거의 매호 기사가 삭제, 압수되는 등 일제강점기 가장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또한 천도교가 주축이었지만 종교, 정치, 사상, 사회, 역사, 문화, 언론, 문학 등 지성 전반을 다루는 최초의 종합잡지였으며, 재정압박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원고료를 지불하면서 판매지사와 회원제 등을 통해 획기적인 미디어 유통제도를 확립했다.

《개벽》은 창간과 복간, 그리고 속간을 거듭했는데, 차상찬은 그 영욕의 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유일한 인물이다. 《개벽》의 가시밭길은 1920년 6월 창간호부터 예고되었다. 일제 당국이 차상찬의 한시 두 편을 포함해 일부 기사내용을 문제 삼아 발매·반포금지 처분을 내린 것이다. 이에 문제된 기사를 삭제하고 호외를 다시 발행했으나, 이 또한 모두 압수당했다. 결국 다시 임시호를 발행해 겨우 창간호를 배포할 수 있었다.

《개벽》과 관련해 차상찬이 가시화된 것은 1922년 초 편집부에서 활동하면서부터지만, 실상은 창간 초기부터 관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개벽》 발행은 천도교청년회의 주요사업이었고, 당시 차상찬은 그 조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922년 정기총회에서 간부로 선출된 이후 개벽사에 합류해 주요 집필진이자 편집인으로서 불철주야 《개벽》 발행에 혼신을 다한다. 그러나 총독부는 1926년 8월 1일 72호에 실린 기사를 문제 삼아 발행금지 처분을 내리고 기어이 《개벽》을 폐간시킨다.

그러나 차상찬은 《개벽》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8년 후인 1934년 11월, 그는 사재를 털어 《개벽》 복간호를 세상에 내놓았다. 복간사에서 차상찬은 ‘개벽사 창건 14주년을 맞아 개벽이 다시 나오게 된 것은 마치 생일잔치에 아들을 낳게 된 것과 같은 기쁨’이라면서 ‘최후의 1인, 최후의 일각까지라도 본지를 위하여 분투용전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이광수, 염상섭, 김동인, 김기진, 주요한, 김억, 유진오, 이태준, 이기영, 김동환, 김기림, 백신애, 박영희, 이헌구, 백철 등이 글을 보내 힘을 실어주면서 복간호는 발행 후 곧 품절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차상찬은 발행인으로서 박영희에게 편집책임을 맡기고 회원제를 확대하는 등 제반사항을 정비하고, 오직 《개벽》의 부활을 위해 매진한다. 그런데 일제 당국에 의해 편집자와 집필진들의 활동이 위축되고 사재로 충당하던 발행비도 한계에 도달하면서 영광스런 복귀를 꿈꾸던 《개벽》 신간호는 1935년 1월 통권 4호로 폐간되고 만다.

《개벽》에는 차상찬의 글이 120여 편 실려 있다. 종종 한 호에 여러 편의 글을 싣기도 하는데, 《개벽》 70권(1926.6.)에는 〈회고이십칠역대〉, 〈이태조의 건국백화〉, 〈사화와 당쟁〉, 〈경성잡화〉 등 네 편의 글이 차상찬, 차천자, 성동학인, 첨구생이라는 서로 다른 필자명으로 실려 있다. 청오, 향로봉인, 관상자, 차천자, 상찬, 차특파원 ,일기자 등의 필명으로 발표된 글도 수십 편이다. 그는 검열을 피하고 부족한 집필진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수십 개의 필명으로 밤낮없이 글을 썼다.

《개벽》이 다시 살아난 것은 해방 후 1946년 1월이다. 이 때 차상찬은 편집고문을 맡는다. 그러나 속간의 감격을 석 달도 누리지 못한 채, 그는 3월 24일 돌연 세상을 뜬다. 식민지 언론인으로서 온갖 고초에도 불구하고 26년 동안 《개벽》과 함께 ‘개벽’의 날을 향해 잠시도 쉬지 않고 내디뎠던 차상찬의 당당하고 고단한 발걸음은 운명 앞에 멈추고 만다. 《개벽》 속간호도 1949년 3월 끝내 종간된다.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한국근대잡지사에서 《개벽》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차상찬의 열정과 노고가 없었다면 그 탁월함은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현숙 (강원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