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사람들》 500세대 이상 아파트 전수조사, 47곳 중 15곳에만 ‘에어컨’
석사동 진흥아파트, 입주자 대표 주도로 설치해 눈길 끌기도

최근 아파트 경비원들의 에어컨 설치 문제가 화제가 됐다. 서울 중량구의 한 아파트에서 익명의 사람이 에어컨 설치 반대 전단지를 붙이는 일이 있었다. 또 대전의 한 아파트의 경우 아파트 도색업체에서 경비원을 위해 에어컨을 설치해 줬지만, 일부 동 대표가 전력량계 설치와 에어컨을 비닐로 ‘봉인’시켜 사용하지 못하게 해놨던 사례도 있었다. 반면, 아파트 주민들이 앞장서서 경비원실에 에어컨을 설치해줬다는 훈훈한 이야기도 들려온다. 춘천의 상황은 어떨까?

《춘천사람들이》 춘천 내 500세대 이상 아파트 47곳을 조사한 결과 15곳만 경비실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었다. 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은 의무사항이 아니라 설치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더욱이 저렴한 보증금과 임대료, 관리비를 부담하는 공공임대 아파트일 경우 관리비의 증가는 입주자의 입장에서는 반가울 리가 없다.

지난주 장마 이후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 에어컨 없는 경비실은 사방이 유리로 돼 있어 한여름에는 온실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다. 선풍기 한 대로 더위를 견뎌내기엔 무리다. 아파트 경비원인 양아무개 씨는 “을의 입장이라 건의가 어렵다. 더운 여름 몇 달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근무하고 있다. 에어컨 설치는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 하더라도 주민들의 공동전기료 부담이 문제”라고 말했다. 또한 “야간근무 중에는 불을 항상 켜 놓는데, 더워서 창문을 열면 나방 같은 벌레들이 들어와 문을 열지도 못 한다”고 고충을 토해냈다.

퇴계주공2단지 입주자인 박봉용(85) 씨는 “관리비가 부담스럽다. 지금 이 아파트에 사는 거주자들도 에어컨 없는 가구가 많은 상황인데, 경비원 1명을 위한 에어컨 한 대는 좀 부담스럽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퇴계주공2단지 아파트 한 동의 실외기를 세어보니 72가구 중 28가구만이 설치돼 있었다.

11일에 에어컨을 설치한다고 밝힌 거두부영1·2단지의 한 경비원은 “체감온도가 30도 이상 더 올라간다. 밖보다 안이 더 덥다고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한편 관리사무소 측은 “경비실 각 초소에는 감시장비들이 설치돼 있다. 아파트 측은 감시장비에서 나오는 열기가 경비 초소에 가득 차 경비원들의 근무에 지장이 생길 것을 우려했다. 입주자 대표들이 3월 안건에서 승인했고, 이번 달 중에 에어컨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퇴계주공1단지는 올봄에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마쳤다. 퇴계주공1단지 관리사무소 측은 “에어컨은 더운 날씨에 고생하는 경비원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동 대표들이 안건으로 제시해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승인이 돼 설치하게 됐다”고 답변했다. 이어 “설치한 지 얼마 안 지났기 때문에 정확한 관리비나 전기료에 대해서는 지나봐야 주민들의 반응이 나올 듯하다”고 덧붙였다. 퇴계주공1단지 정운봉 경비원은 “더운 여름나기가 걱정되었는데 이런 호의를 베풀어준 주민들에게 고맙다”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한편, 에어컨 설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해 주민 전체의 동의를 얻어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안건을 승인해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은 아파트도 있었다. 석사동의 ‘진흥아파트’는 2월부터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추진했으며, 4월 24일에 설치 안내문을 각 가정에 배포하기로 결정했다. 진흥아파트 송용호(57) 관리소장은 “더운 여름을 좁은 공간에서 열악하게 근무하시면서 보낸 경비원들을 보는 것이 안타까워 입주자 대표회의 안건으로 추진하고 작년 예비비로 예산을 편성했다”고 말했다. 또한, 송 소장은 “반대하는 주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어떻게 설득할지를 제일 많이 고민했다”고 밝혔다.

진흥아파트관리소 측과 동 대표자들은 전체 주민들에게 알리고 이해를 구하기 위해 전단지를 돌렸다. 전단지에는 전기료가 하루 평균 8시간 가동했을 때 나오는 값을 현 거주세대 563세대를 나눠 계산한 내용이 첨부된 상태로 배포됐다. 공동전기료는 일반가정집처럼 누진제가 아니므로 전기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음을 꾸준히 설득했다. 실제로 초소 네 곳의 에어컨 설치비용은 가구당 약 2천753원이었고, 전기료는 월 260원 정도로 산출됐다. 경비실 에어컨 설치와 관련해 입주민 A씨는 “조그만 에어컨 설치와 관리비 부담을 여럿이서 하니 걱정이 안 된다”고 대답했다.

진흥아파트 경비원은 “이해와 협조를 해주신 주민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원래는 덥고 좁은 공간에서 햇빛이 들어오거나 하면 더위를 이길 방법이 없었는데, 이런 좋은 취지로 에어컨이 설치돼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김인규·최정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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