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주의보가 내린 한낮 자전거로 배후령을 넘는다. 누가 시키면 결코 할 수 없을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자전거 안장에 올라앉으며 페달을 밟는 순간부터 가야 할 길은 정해지고 목적지는 분명해진다. 가장 힘든 일은 당연히 언덕을 올라가는 일이다.

고개가 시작되는 지점부터 굽이굽이 오르는 길은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흐르는 땀이 눈을 찌른다. 패드를 덧댄 바지를 입었지만 엉덩이가 아파오고 핸들을 잡은 두 손이 저려온다. 허리까지 뻐근해지고 체력이 방전된 것이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쉬었다가거나 끌고 가겠다는 욕망이 고개를 쳐든다. 더 천천히 가야 하는 순간이다.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순전히 나만의 몫이다. 스스로 배후가 되어 나를 밀고 나아가야만 하는 순간.

그렇게 안간힘을 쓰며 페달을 밟아 고개마루턱에 닿게 하는 힘은 오롯이 스스로에게 있다. 힘겨운 힘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굽이굽이 언덕 꼭대기에 다다르면 비로소 지나온 길이 보인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 내 배후에는 나 이외에 아무도 없게 된다. 설령 일행이 있더라도 그들도 나도 스스로 전면이 되고 배후가 되어 스스로를 밀어 올려야 한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는 동안 ‘나’라는 존재는 자전거를 타고 온 시간의 총합이 되어 고갯마루 정상에서 쉬게 된다.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이 내가 살아 온, 끌고 온 세월이 나의 생애와 배후가 되는 것이다.

자전거로 배후령을 넘으면서 지구라는 행성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는 하나하나의 국가들의 배후, 내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배후를 생각했다. 당연하겠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배후는 대한민국의 구성원들이 살아 온 삶의 역사 그 자체다. 그런데 몇 세대에 걸친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들이 지속되었다. 자기 스스로 역사와 배후가 되지 못한 이들이 ‘통치’해 온 역사.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한 국가의 역사가 아니라 그들만의 역사였다.

일제식민지에서 해방되자마자 남북으로 갈렸고, 한국전쟁이 발발했으며 아직까지 60년 넘게 정전상태로 남아있는 유일한 분단국. 4·19의거와 5·18광주민주항쟁으로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고,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수없이 많은 이들이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국가.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미국과 일본이라는 배후가 똬리를 틀고 있었던 그들만의 시대를 건너왔다. 춘천에서 캠프페이지가 반환된 것도 2005년의 일이었다. 그 배후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자마자 6·15남북공동선언, 전시작전권 환수,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과 함께 평화협정이 자연스럽게 논의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지난 10년은 그야말로 역사의 수레바퀴가 뒤로 돌려지는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 미국이나 일본의 정치 모리배들과 국정원이나 청와대를 배후에 두고 나쁘게 작동한 국가권력의 시스템은 4·16참사를 불러오기까지 했다. 이 모든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역사이며 배후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새 정부는 이 모든 것을 안고 가야 한다. 그 첫 출발이 만만치 않아 보이기도 한다. 스스로 배후가 될 깜냥도 되지 못하고 태극기를 두르고 설치는 부류들이 발목을 잡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배후는 대한민국의 역사고 대한민국 국민이다. “양키 고 홈! 사드 가고 평화오라!”
 

김재룡 (화천고 교사)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