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환갑날 찍은 사진 속 내 모습은 시무룩하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다. ‘좋은 날, 계집애가 머리를 빗으면 부정 탄다’는 할머니의 만류로 머리손질을 못한 탓이다.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해본 일 없는 할머니의 한마디는 당황스러웠다. 부스스한 몰골로 사람들 앞에 나서기는 싫었지만, 할머니 말대로 나쁜 일이라도 생길까 몰래 빗을 용기도 내지 못한 채, 여덟 살 계집애는 종일이 우울했다.

새해 첫날은 말할 것도 없고 아기 낳은 집, 굿하는 집, 결혼식이 있거나 장사 난 집이 암만 궁금해도 남자아이들처럼 대놓고 구경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람’대접보다 ‘여자’가 알아둬야 할 금기를 먼저 배웠다. 연유를 캐묻는 것도 얌전하지 못한 일이었다.

세 며느리가 무릎도 펴지 못한 채 부친 따끈한 전을 안주로 아주버님들이 웃음꽃을 피우는 명절날, 아파트 자치회장 선거에 등록하려는 내게 “아줌마가 이런 쪽에 경험이 있느냐?”며 아래위로 훑어보던 관리소장의 눈빛, 촌각을 다투는 수술동의서에 아버지나 오빠가 아닌 언니라서 안 된다는 병원의 이상한 규정, 친정엄마의 사망신고를 하러간 내게 아들이 둘인데 왜 딸이 왔냐는 면사무소 직원의 어이없는 일갈…. 이외에 반상회에서, 은행에서, 관공서에서, 거리에서, 공동주거지역이나 학교의 안과 밖, 사회 구석구석의 어떤 자리에서 일어났던 그 모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여성에 대한 차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쉬 이해가지 않았던 내 일상의 경험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닐 뿐더러 사소하게 치부될 사안도 아니다. 안다는 것은 그만큼 불편해지는 일이어서일까. 차별금지를 법이 보장한다지만 ‘여성’을 이야기 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김영주 노동부장관 후보자를 포함, 문재인 정부 들어서야 ‘여성 장관 30%시대’가 열렸다. 대학가에 나도는 여성혐오 대자보, 권력 가진 이들의 천박한 성의식, 모성신화와 여성을 분리하는 가부장문화의 현실에서 아주 반가운 일이다. “성 평등은 국민의 행복과 안전,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해 더 이상 후순위로 둘 수 없는 핵심가치”라는 정현백 여성가족부장관의 취임 일성은 불평등과 격차해소를 위해 또한 당연하다. 북유럽국가들의 공통점이 모든 ‘정책’입안에 ‘평등’이 중심이 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당신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다(제1조). 당신은 신체의 자유와 신체의 안전을 누릴 수 있다(제3조). 당신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당신이 어디에 살 것인지(제13조), 당신이 어떤 의견을 가질 것인지(제19조), 당신과 당신의 배우자 두 사람은 언제나 동등하다(제16조). 당신은 이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제2조).

1948년 제정되어 올해로 69주년을 맞은 세계인권선언에 나와 있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목록 중 일부다. 여기서 ‘당신’을 ‘모든 사람’으로 바꾸면 본래의 뜻은 더 명료해진다. 모든 사람의 절반은 여성이다. 보이지 않는 장벽, ‘유리천장’이 자주 깨지길 바란다. 다 같이, 평화롭게, 사람답게 살기 위해.
 

남궁순금 (전 춘천여성민우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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