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자들

모든 비극은 2008년부터 시작됐다. ‘그분’은 방송의 독립성을 강조했던 전임 대통령과 달랐다. 후보 시절 자신을 비판하던 KBS를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시작은 정연주 전 KBS 사장에 대한 집요한 공격이었다. 결국 정연주 사장은 해임됐고,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많은 PD가 잘려나갔다. 다음 타깃은 광우병 보도를 했던 MBC였다.

광우병 관련 MBC ‘PD수첩’의 보도에 여론은 요동쳤다. 대규모 촛불집회가 계속됐고, 성난 여론에 이명박 정부는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을 수입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후 MBC에 대한 공격이 시작됐다. 엄기영 사장이 사임하고, ‘낙하산 사장’이라는 비난 속에 김재철 사장이 임명됐다. 본격적인 탄압이 시작됐다. 결국 2012년 MBC 노조는 총파업을 결정한다. 파업은 2012년 1월 30일부터 7월 18일까지 170여일간 지속됐다.

파업의 대가는 잔인했다. 순서대로 이용마, 정영하, 강지웅, 박성호, 최승호, 박성제 모두 6명이 해고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자료에 따르면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해고 10명, 정직 84명 등 모두 223명의 노조원이 징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재철 사장에 이어 취임한 안광한 사장도 전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두 방송사의 보도는 경악을 금치 못할 수준이었다. MBC는 성급하게 ‘학생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보도했다. KBS는 다른 방송사들이 ‘학생 전원구조’가 오보임을 알고 이를 정정보도한 이후에도 재차 오보를 내보냈다. 오보로 인해 구조작업에 차질을 빚었다.

경악할 만한 일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당시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세월호 보도와 관련해 KBS에 외압을 가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을 비판하는 보도를 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결국 이날 방송에서 해경을 비판하는 기사는 사라졌다.

MBC에선 막말이 논란이 됐다. 김장겸 현 MBC 사장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해 ‘깡패’라 지칭해 유족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세월호 유가족이 억지를 쓰고 있다며 유족들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켰다. 박상후 시사제작부국장은 “그런 놈들, 관심 가질 필요 없어”라고 말하며 유가족을 비난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 두 공영방송은 또다시 침묵했다. ‘물타기’를 하며 사건의 본질을 흐렸다. 감시견(Watch Dog)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애완견(Lapdog)의 역할도 모자라 경비견(Guard Dog)이 되었다. 익히 알고 있듯이 공영방송은 뿌리째 망가졌다.

그러나 거리로 내쳐진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투쟁을 이어왔다. 외로운 싸움이었다. 이제라도 시민들이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응원해줘야 한다. 복막암 진단을 받아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는 이용마 기자, 시종일관 밝은 웃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다 결국 울음을 터뜨린 김민식 PD, 언론 적폐세력을 찾아다니며 집요하게 인터뷰를 시도한 최승호 PD 등 부당하게 쫓겨난 언론인들. 이들이 화병(火病)으로 건강을 해칠까 염려된다.

이용마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싸움의 의미요? 저는 그래도 기록만이라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적어도 우리는 그 암흑의 기간에 침묵하지 않았다”고. 핍박과 억압 속에서도 언론인의 자긍심으로 긴 싸움을 이어온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젠 길고 긴 싸움의 종지부를 찍을 때다. 그리고 과거 찬란했던 두 공영방송 MBC와 KBS의 명성을 되찾을 때다.

최승호 PD가 찾아간 사람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절대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최승호 PD는 말한다. “언론을 망가뜨리고 급기야 나라까지 망가뜨린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이제 우리가 책임을 물어야 한다.

 

 

 

강한결 (영화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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