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현상

“정권에 부역하고 완장질 하는 놈들은 좌든 우든 똑같아. 노조 간부라고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꼴, 정말 역겹더라.”

아주 가까운 형이 베이징 특파원 생활을 할 때 전해 들었던 약간 충격적인 얘기. 여기서 정권은 노무현 정권이었고, 방송사는 정부의 입김이 가능한 공적 소유구조를 갖춘 곳이다. 나는 그 형의 태생적인 반골(反骨)기질을 잘 알고 있는 터여서 기계적 중립이나 운운하고, 먹물근성으로 점철된 전형적인 언론지식인의 개인적 한풀이 정도로 이해했다.

2014년 4월 16일. 생명의 존엄과 권력의 영속화 앞에 갈등하던 언론은 기꺼이 ‘기레기’가 되길 자처했고, 팽목항에서 한 달의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그 형은 탈곡된 영혼을 부여잡고 밤새 목 놓아 울었다. 소신이었는지 지위문제였는지는 모르지만 노조 일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그마저도 사회부 부장에서 사원으로 좌천되었고, 현장과는 관련 없는 부서에서 수년째 시간을 죽이고 있다. 그와 나는 아버지가 같다.

지구를 구하려고 태어난 사람 따위는 없다. 우린 모두 살기 위해, 산다.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지고지순의 절대선 같은 걸 찾아 헤매며 사는 사람은 필시 망상이 과대하거나 스스로 초라한 이다. 물 좀 아껴 쓰라고 충고한 사람에게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부당전보 한 자들, 실력과 능력이라는 공정한 시스템을 한줌 권력의 힘으로 찬탈하려는 자들, 국가수호, 애국애족의 절대선(?)을 빙자한 기생정당의 말로(末路) 앞에 김민식 PD의 담백한 저항은 그래서 더 큰 울림이 되었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김장겸은 물러나라! 김장겸은 물! 러!! 나!!! 라!!!!” 2012년 MBC 170일 파업의 주역 이용마 기자는 해고 후 복막암 투병 중이다. 살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어찌 이리 노곤(勞困)한가!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 - 미셸 오바마). 서로의 소신을 지켜줄 줄 아는 광장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통지표에 “이 학생은 똥고집”이라는 통지문이 담겨있던 사람.

“왜 노조를 하는가, 이건 아주 단순한 문제입니다. 노조를 안 할 수 있는 명분이 없습니다. 운동까지는 못 되더라도 직업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식, 소시민적 도덕성을 지키려고만 해도 노조활동은 불가피합니다. 이게 우리 방송 현실의 비극인데, 거기에 국민의 눈과 귀를 대신한다는 우리 직업의 특수성이 더해집니다. 노조만이 유일하고 합법적인 선택이지요.…실체는 분명하지 않더라도 지금껏 제 일생에 지켜온 어떤 일관성이 있다면 그것을 끝까지 지키고 싶습니다. 나이가 든다고 지위가 달라진다고 해서 제 자신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겁니다.”(《손석희 현상》, 강준만 著·인물과사상 刊)

푸른 수의에 수갑을 차고 밝게 웃던 아름다운 청년 손석희의 서른 중반 인터뷰 내용이다. 환갑이 지난 이 중견 언론인은 ‘균형, 공정, 품위, 팩트’의 4가지 원칙을 견지하며, 어젠다 키핑의 중요성을 실천하고 있다. 백화점식 보도관행을 없애고, 중요한 의제는 ‘한발 더 들어가’ 끝까지 파헤치는 뚝심을 보여준다. 세월호 보도와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시국에서 JTBC 뉴스룸은 발군이었다.

국회의원 162명이 발의한 언론장악방지법이 국회에 계류 중인 것으로 안다. 공영방송 이사회구성을 여야 7:6으로 구성해 3분의 2가 찬성하는 ‘특별다수제’를 골자로 하는 내용인데, 언론단체에서는 방송 현업인이 30% 정도 참여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계적 중립의 위험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권력은 때론 엄청나 보이지만 우리가 강조하는 것이 곧, 우리의 결정이 된다. 노곤할지언정,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나?

류재량 (광장서적 부사장)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