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카르멘’ 포스터.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하더니 가을비가 내린 이후 기온이 많이 내려가 아파트 거실에서 맨발로 있으면 발등이 서늘해진다. 저녁에 소양강변 산책을 할 때면 여름내 그리 울어대던 풀벌레 소리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아마 풀벌레들도 겨울준비에 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오늘은 가장 뜨거운 오페라를 조금 차갑게 생각해보려 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뜨거운 오페라는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카르멘’이다.

1875년 파리의 오페라 코믹극장에서 초연된 카르멘은 파리의 상류층과 예술가들 사이에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오페라를 즐기는 파리의 시민들에게 신분도 비천하고, 도덕적으로 본받을 것이 없는 주인공 여인을 중심으로 애정의 갈등을 겪다가 칼부림이 일어나는 막장의 오페라 광경에 시민들은 혼비백산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당시에 클래식 음악이 사회 상류층과 특권층들이 즐기는 예술이었고, 우아하고 세련된 교양이 그들 삶의 틀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지위에 알맞은 우아하고, 고전적이고, 교양이 있는 예술과 동떨어진 오페라를 관람한다는 것을 쉽게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대 유명했던 오페라 작곡가인 주세페 베르디의 곡도 정결하고 순수한 여인이 주로 주인공이었으며, 오페라의 인물은 신화적이거나 상류층의 인물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이전 모차르트의 오페라의 경우를 보아도 오페라의 큰 틀에 항상 고귀한 상류층의 인물이 주인공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카르멘의 경우는 아주 달랐다. 비제의 카르멘에는 담배공장에 다니는 부도덕하고, 정절이 없고, 도둑질과 마약거래도 서슴지 않는 ‘카르멘’이라는 여인이 가장 큰 주인공이고, 하급군인하사관 돈 호세가 다른 주인공이며, 재빠른 몸과 세련된 근육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결코 상류층에 속할 수 없는 투우사가 또 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해 상류층의 예술을 대변하는 느낌을 가지기 어려웠다. 그래서 파리의 귀족들은 저속한 주인공의 행동에 실망했을 것이고, 파리의 여인들은 하고 많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놔두고 거리의 여인과도 비슷한 집시여인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비극으로 치닫는 극의 진행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들의 감정이 파리사회에 호의적이지 않은 여론을 만들었고, 이 비난은 고스란히 비제에게 집중되었을 것이다. 비제가 비록 지병인 폐병을 앓고 있었으나 1875년 6월 3일 사망한 것을 보면 카르멘을 공연한 지 불과 3개월 후라서 파리의 비난과 비제의 죽음이 연관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예술가들은 카르멘에 호평을 하였는데 왜냐하면 예술가는 정신의 압제를 육체의 압제만큼이나 싫어하는 존재이며, 존재하는 것을 하나하나 존중하여 찾아내고 키워나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종교나 도덕이 아무리 인간의 고귀하고 아름답고 순종적이고 순결한 것에 초점을 맞추어 사람들을 계도하고 가르치려 하지만, 인간의 비열함, 천박함, 구속되지 않는 감정 등을 인간의 본연에서 제외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카르멘은 당시 감추고 싶었던 인간의 본질적인 본능을 가장 적절한 배역과 음악의 조화를 통하여 너무도 잘 드러내주었기 때문이다. 기실 이러한 본질의 드러냄이 후에 더욱 큰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오페라의 곡과 배역들의 배치 등에서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다루지 않고 철저히 균형을 만든 비제에게 경의를 표하며, 가장 뜨거웠던 계절이 지나고 서늘해지는 가을날 차분하게 뜨겁고 아름다운 카르멘을 음미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요즘은 “나는 감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도 존중되는 시대이다. 다음호에서는 오페라 카르멘의 인물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을 나누어보고 싶다.

김명우 (봉의고 전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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