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여성에 몰두해 남성이 판단력을 잃고 결국 함께 인생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여성들을 우리는 팜므파탈(femme fatale)이라고 부른다. 매력적이라는 점에 방점을 두어 많은 여성들이 팜므파탈을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팜므파탈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스스로의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요부(妖婦)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오페라에도 팜므파탈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있지만, 내 생각에 현대적 의미의 팜므파탈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은 카르멘이다. 카르멘의 인생관과 욕망을 요약해 표현한 노래가 유명한 ‘하바네라’다. 하바네라는 쿠바풍의 음악으로 “L’amour est un oiseau rebelle(사랑은 배반하는 새랍니다)”로 시작해 “Si je t’aime, prends garde a toi(내가 당신을 사랑하면, 조심하세요)”로 끝나는 유명한 노래다. 카르멘은 호세를 유혹할 때 이 노래를 부른다. 하바네라에는 카르멘의 사랑방식이 있다.

배신하는 새(oiseau rebelle)는 카르멘을 나타낸다. ‘rebelle’을 ‘변하기 쉬운’, ‘반항하는’, ‘자유로운’ 등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changeant(변화하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단순히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배신행위를 예고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적절하겠다. 그래서 사랑을 하거나 끝낼 때 카르멘은 상대방을 몹시도 아프게 한다.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원작소설에서 카르멘은 불우한 가족관계 속에서 학대받은 어린 시절을 보낸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아마도 유년기에 유린된 사랑을 투영하는 역설적 심리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오페라 ‘토스카’의 여주인공 토스카나, 영화 ‘노트르담 꼽추’의 여주인공 에스메랄다의 아름다움이 주변인들의 욕망을 흔들어 비극에 처하게 되는 반면에 카르멘의 경우는 스스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주변인을 적극적으로 유혹하고 비극을 만든다. 카르멘에게는 사랑의 유혹이 마치 사냥이나 낚시의 행위와 비슷해서 온갖 전략을 사용한다. 그래서 유혹하기 위한 꽃 한 송이, 남과 다른 복장 정도는 항상 준비하고 있으며 그 효과를 확신한다. 담배공장에서 퇴근하는 와중에도 호세와 비슷한 사냥감을 유혹하기 위한 장미꽃(원작에는 아카시아)을 준비하는 철저함이 있다. 그런데 카르멘이 유혹할 때 그녀의 말과 행동은 사랑을 얻으려는 그녀의 감정에 충실할 뿐 그 밖의 아무런 목적이 없다. 그래서 이러한 진정성이 상대방을 감동시킨다.

카르멘은 사랑을 쟁취하려는 욕망은 있으나 사랑을 함께 향유하려는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카르멘이라는 사랑의 새는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날아가 버리고, 무관심한 대상에게는 진심으로 사랑을 느끼는 이율배반적 심리가 교차된다. 카르멘이 이성을 유혹하고, 매혹이라는 굴레로 상대방을 정복하고 나면 그에 대한 사랑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사랑의 온기를 냉혹하게 다른 사랑으로 보낸다. 그래서 카르멘에게 진정한 사랑을 받으려면, 그녀에게 유혹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아카시아와 같은 하찮은 꽃도 그녀가 건네주면 너무나 소중한 사랑의 징표가 된다. 그래서 비극이다.

카르멘은 오직 그녀의 감정에 충실할 뿐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사랑을 추구할 수 없는 것은 그녀에게는 죽음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돌아와 달라는 호세의 애절한 간청을 무시하고 분노한 호세의 칼에 목숨을 잃는 것이 그녀의 운명이다.

카르멘의 성격을 현대 심리적 측면으로 보면, 거의 사이코패스와 비슷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르멘이라는 인물에 감동되는 것은 그녀의 심리 속의 진정성과 슬픔에 감동되기 때문인 듯하다.

카르멘 역에 가장 알맞은 가수는 아마도 마리아 칼라스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매우 관능적이고, 거칠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요즘 가수를 추천하라면 라트비아의 엘리나 가란챠(Elina Garanca)를 추천하고 싶다.

김명우 (봉의고 전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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