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광화문 글판에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라는 시구가 올라왔던 이용악 시인(1914~1971)의 <그리움>이다. 이 시를 읽을 때는 그가 월북시인이라는 색안경은 벗고 보는 것이 좋다. ‘북쪽’은 그냥 두고 떠나온 온 고향이고, ‘백무선’은 굳이 두만강 가를 지나는 철도가 아니라 어느 고향역을 지나는 철길이어도 좋겠다.

1947년 광복 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아무래도 함박눈으로 상징되는 해방의 기쁨과 더불어 떠나온 고향에 대한 서정적 그리움으로 넘친다. 남기고 온 ‘너’는 아마도 고향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리라. 부모형제도 좋고 친구와 연인이라도 좋으리라. 이 시의 첫 연과 마지막 연은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로 시작되고 또 끝나는 전형적인 수미상관이다. 그만큼 시인은 함박눈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시의 백미는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라는 시구 같다. 파란 잉크병과 하얀 눈이 내리는 밤의 시각적 이미지가 선연하게 다가온다. 시인은 아마도 잉크가 얼지 않도록 입김으로 호호 불어가며 ‘어쩌자고 잠에 깨어’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하얀 눈 위에 파란 잉크로 번지는 그리움을 써내려갔던 것일까?

 

허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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