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 심기복의 2017 <겨울밤의 세레나데> 연주회를 다녀와서

엊그제 내린 눈이 길 위에 듬성듬성 쌓여있는 12월의 겨울밤. 춘천문화예술회관의 언덕길을 올라가서 도착한 성악가 심기복의 독창회에는 이른 저녁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전상영 피아니스트의 해설로 이날의 메인공연인 오페라 아리아 6곡의 연주가 시작됐다.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의 ‘소문은 산들바람처럼’을 처음 불렀는데, 노랫말처럼 가벼운 바람이 서서히 커지다가 태풍처럼 천둥번개처럼 거세게 객석을 몰아쳤다. 이어서 도니제티의 <루크레지아 보르자>에서 ‘복수여 나에게 오라’가 시작되었을 땐 웅장한 음량으로 베이스 성악가의 참모습을 보여주었다.

잠시 쉬었다가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에서 그 유명한 아리아 ‘나비는 이제 날지 못하네’가 연주됐는데, 귀에 익숙한 노래라서 그런지 어깨가 절로 들썩여졌다. 청중들은 이제 서서히 연주자의 목소리와 몸짓에 동화되기 시작했다.

다음 곡은 <일 과라니>를 작곡한 브라질 출신 고메스의 <살바트로 로사> 중 ‘즐거운 날 신랑의 아버지가 되었지만’이다. 이 곡도 유명한 베이스 아리아다. 어찌 들으면 지진이 난 듯 지축이 울리고, 또 어찌 들으면 깊은 산 메아리처럼 겹겹이 울려오는 목소리. 원곡과 너무나 딱 어우러졌다.

이날 곡 해설을 맡아 진행한 피아니스트 전상영은 피아노 반주도 함께 하면서 매혹적인 연주를 보여 주었다. 베이스 심기복의 노련미에 청중들은 노래마다 넋을 읽고 무대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이어서 나머지 아리아 두 곡을 부르게 되었다.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의 ‘찢어질 것처럼 아픈 영혼’이다. 아버지가 딸을 지켜주지 못한 마음을 노래한 이 곡은 베이스 심기복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 같았다. 다른 곡도 그랬지만 본격 오페라무대에서 들었으면 정말 좋았을 곡이었다.

다음은 베르디 <아틸라> 중에서 ‘내 영혼이 벅차오르는구나’가 연주됐다. 땅을 누르는 듯 하늘을 울리는 듯 저음의 베이스는 세상의 가장 낮은 소리로 사람들의 심금을 가장 깊게 파고들었다. 베이스 파트의 중량감과 폭발성을 아낌없이 들려주었다.

1부 순서가 끝나고 잠시 인터미션이 있다가 2부가 시작되었는데 베이스 심기복은 약간은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 가곡 ‘시간에 기대어’와 에릭 레비의 ‘I believe’를 불렀다. 두 곡 모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상념과 함께 우리 하나가 되자는 송년의 메시지가 물씬 풍기는 선곡이었다. 이어서 전상영 피아니스트가 리드하는 트리오가 드럼주자와 함께 앙상블로 무대에 나왔다. 베이스 심기복은 우리가 좋아하는 이태리 칸초네 ‘Aldila’와 ‘Come prima’를 불렀다. 모두들 신이 났다. 특히 여성관객들은 부드럽고 감미로운 그의 목소리에 반해버린 듯 호응이 컸다. 그야말로 그의 노래가 마른 영혼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느낌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바람인가, 천둥인가, 눈인가, 비인가?

드럼이 퍼커션으로 바뀌고 엔딩곡으로 ‘Quizas, quizas, quizas’를 불렀다. 우리는 키사스를 연호하며 함께 따라 불렀다. 경쾌한 리듬으로 청중 모두 즐거워했다. 당연히 청중들은 앙코르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원래 수줍음 많이 타는 편인 베이스 심기복은 큰 박수에 응해 한 마디 하고는 그가 즐겨서 부른다는 창작가곡 ‘봄날’을 불렀다. 나의 선배 허형만 시인의 작품이다. 또 다시 관객들은 앙코르를 연호한 끝에 그의 칸초네 ‘Che Sara’를 들을 수 있었다. 높은 음으로 부른 그 어떤 가수의 노래보다도 청아했다. 낮은 소리가 높은 소리를 이긴다.

신이 내린 베이스의 목소리에 그날 저녁 우리들의 귀는 편안해졌다. 한결 깨끗해졌다. 낮은 소리로 인간의 심금을 울려주는 위대한 베이스 오페라 아리아와 그의 노래들은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친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춘천지역사회에 이 같은 훌륭한 연주자가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느껴야 할 것 같다. 커튼콜이 끝나고 객석 밖으로 나와 보니 베이스 심기복과 듀엣을 많이 하는 소프라노 민은홍교수도 와 있었다. 심기복-민은홍-전상영 같은 우리 지역출신 음악가들의 콜라보는 춘천의 예술적 자산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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