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사진작가 최기순

북극보다 추웠던 한파를 지나 동장군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진 지난 15일. 복합문화공간 ‘5NOTE’에 표범을 닮은 한 남자가 들어섰다. 카페 안쪽에 위치한 갤러리를 홀로 누비며 작품을 설치하는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빠른 듯 섬세한 움직임이 꼭 표범을 닮았다.

야생동물 사진작가 최기순(56) 씨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중도뱃터에는 지난주 몰아닥친 한파가 무색하게 포근한 안개가 감싸고 있었다.

그가 다큐멘터리를 작업한 지 어느새 30년이 지났다. 처음 10년은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휴먼다큐를 만들었다. 1997년 EBS를 통해 시베리아 야생 호랑이를 만났고 그게 인연이 돼 그 길로 자연 다큐멘터리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누구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동경하지 않느냐”며 자신도 자연스레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동경했고, 그 자연스러움의 연장으로 자연다큐를 작업하게 됐단다. 그러다 2002년 한국표범의 발자취를 찾는 작품을 만들고는 그대로 표범을 탐닉하게 됐다.

한국표범은 특히 일제강점기 해수구제의 명목으로 수없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나라에서 표범의 생존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1962년 경상남도 합천 오도산에서 생포된 수표범이 마지막이다. 이 표범은 당시 창경원으로 이송된 후 다시 서울대공원으로 보내졌으나 갑작스런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고단한 생을 마감했다. 이후 표범은 한반도에서 흔적을 감추었고 현재 러시아 연해주 변방 하산 지역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는 그들의 생과 사를 카메라에 담아 기록하고 있다.

5NOTE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사진전은 영하 40도 극한의 시베리아 타이가 지역에서 종족의 번식을 위해 살아가는 슬픈 표범 가족의 이야기와 야생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표범의 모습을 담았다.
특히, 춘천에서 이렇게 많은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더 의미가 있다. 작가는 지난해 3월 서울 반도갤러리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을 고스란히 춘천으로 옮겨왔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표범의 강렬한 눈빛에 사로잡힌다. 렌즈를 응시한 표범의 눈빛에서 작가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생각한다.

최 작가는 “잠깐 나가 사진 찍고 돌아오는 일은 쉽다. 그렇지만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다큐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용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쩌면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그 문제를 벗어나면 그 다음부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돈이 주는 불편함보다는 자연과 사람이 어떻게 자연을 지켜 공존하느냐 그게 내게는 더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전시를 통해 관객들과 소통할 계획이다. 오는 6월쯤엔 충무로에서 전시를 열고, 예술의 전당 전시도 현재 막바지 조율 중이다. 곧 방송을 통해 새로운 다큐멘터리 작업에 들어갈 계획도 갖고 있다.

 

김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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