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1797-1828)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Winterreise)>는 실연에 빠진 슬픈 한 사나이의 회색빛 우울이 푸념처럼 하염없이 읊조려져서 특별한 스토리를 찾을 수 없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 나그네>가 겨울 음악의 단골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이 마음 아픈 사나이의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을 슈베르트가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어서 인간의 보편적 슬픔과 애틋한 감정을 공유하게 하기 때문이다.

총 24개의 곡으로 이루어진 <겨울 나그네>의 첫 곡 ‘Gute Nacht’에서 사랑에 빠진 나그네가 아가씨 부모님의 인정 하에 결혼을 약속했으나 더 좋은 혼처자리에 아가씨가 마음을 바꾼 사연을 슬프지만 담담하게 노래한다. 곡의 후반부에 ‘Gute Nacht(안녕히 주무세요)’라는 편지를 창가에 놓고 담담하던 노래 곡조가 울컥하는 마음을 표현하듯 격앙된다.

배신의 슬픔 속에서 그녀의 집을 보니 지붕 위에 풍향계가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고 있었고, 그것은 그녀의 변덕스런 마음을 연상하게 한다. 슬픔과 서운함을 담은 두 번째 곡 ‘풍향계(Die Wetterfahne)’는 격렬한 감정을 담은 비교적 짧은 곡이다. 이 곡은 24개의 곡 중에서 유일하게 배신한 아가씨를 비난하고 있으나, 다른 곡에 비해 짧은 노래가 미워하고 싶지 않은 젊은이의 마음을 반영하는 듯하다.

실연한 사람이 그러하듯이 첫 번째 곡부터 일곱 번째 곡에서 나그네는 아름다웠던 추억의 장소를 찾기도 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노력하기도 한다. 싯다르타의 고요한 평화를 구하는 ‘보리수(Der Lindenbaum)’, 달랠 길 없어 매일 흐르는 ‘눈물의 홍수(Wasserflut)’와 ‘냇물 위에서(Auf dem Flusse)’ 등은 심금을 울리는 명곡이다.

나그네는 사랑의 괴로움에 도망치듯 마을을 떠난다. 마을의 높은 첨탑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미친 듯이 얼어붙은 눈길을 달릴 때 눈덩이를 차 던지는 까마귀는 나그네를 쫓아내는 듯하다. 여덟 번째 곡 ‘회고(Rückblick)’부터는 사랑의 슬픔을 잊으려는 여정을 노래한다.

도깨비불도 만나고 숯막에서 옹색하게 휴식을 취하기도 하면서 아픈 걸음을 재촉하던 나그네가 꿈속에서 화사한 오월을 꿈꾸다 깨니 지붕 위의 까마귀 울음소리가 음산하고 누군가 꿈을 조롱하듯 창문에 꽃을 그려놓았다. ‘봄의 꿈(Frühlingstraum)’은 감미로운 곡으로 5월의 꽃을 노래하다가 부질없음에 쓸쓸해지는 곡조로 마무리된다. 이어지는 ‘우편마차(Die Post)’는 오지도 않을 소식을 은근히 기다리는 설렘을 노래한다.
추운 방랑 끝에 숙소에 들어와 보니 하루아침에 머리가 ‘백발(Der greise Kopf)’이 되어 있다. 슬픔은 하루에도 젊음을 빼앗고 죽음을 선물한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머리의 서리가 녹아서 다시 검은 머리로 변하고 나그네는 죽음도 쉽지 않음을 자각한다. 지쳐서 힘없이 헤매는 방랑길에 ‘까마귀(Die Krähe)’ 한 마리가 며칠째 따라온다. 이제 곧 죽음이 오면 내 시체를 먹으려고 하나 생각하다가 내 영혼을 편히 데려가기 위해 동반하는 저승사자처럼 까마귀에게 다정한 친밀감을 느낀다. 그래서 이 곡은 음울한 가사 분위기와는 달리 슬픈 정감이 오히려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희망(Letzte Hoffnung)’을 잃고 인생에 비감을 느끼지만 ‘폭풍우 치는 아침(Der stürmische Morgen)’에 대자연의 거대한 힘을 느끼며 나그네는 기운을 낸다. 그래서 이 곡은 모처럼 기운차다. 비정상적인 정신상태를 반영하는 듯 ‘환상(Täuschung)’을 보지만 환상 속의 노래는 희망이 살아나는 듯 아름답다. 추억이 생각나는 도시를 피해 외딴 산길로 가다가 만나는 ‘숙소(Das Wirtshaus)’는 무덤이다. 쓸쓸한 무덤들은 이미 주인들이 조용히 문을 닫고 누워 있고, 나그네가 쉴 곳은 없다. 힘든 여정을 계속해야 한다.

마지막 곡 ‘거리의 늙은 악사(Der Leier mann)’는 얼음판 위에 맨발로 서서 구경꾼도 없고 접시에 동전 하나 없는데, 쉬지 않고 힘차게 오르간을 켜고 있어 기묘한 모습이다. 젊지만 이미 늙어버린 나그네는 거리의 악사와 함께 하기를 희망한다.

<겨울 나그네(Winterreise)>는 하소연, 회상, 상처로부터의 도피, 미련, 연민, 인식, 수용하는 마음의 여정을 노래한다. 이제 기나긴 비탄과 슬픔의 망령에서 벗어나 나그네의 슬픔과 아픔이 치유되기를 바래본다.

 

김명우 (전 봉의고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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