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 있는 풀잎 하나 없는 공간이라도 노래나 음악이 시작되면 그곳은 아름다운 울림으로 가득한 살아있는 공간이 된다.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오기 전 마음을 가다듬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며 부르는 선생님의 노랫소리는 공간에 좋은 울림을 주어 문을 열고 들어선 아이에게 기분 좋은 하루를 선물한다. 엄마의 기분 좋은 노랫소리로 눈을 뜬 아이는 아침햇살처럼 환하게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어른의 겉모습은 물론 그 내면까지도 모방을 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사들은 늘 좋은 마음을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평범한 우리는 늘 감정이 앞서기 쉽고 평생을 아이와 함께 자라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를 노래가 도와준다. 교사들은 종일 좋은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화음 맞춰 부르는 노래로 하루를 연다.

독일 발도르프 사범학교에서 교사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론너 선생은 예전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소통했다며 노래를 통해 서로 간의 공감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어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노래는 참 좋은 신의 선물이다.

유아들과 생활하는 선생님들은 하루의 리듬을 지내는 내내 노래를 부른다. 아침에는 아침을 여는 노래를 부르고, 손을 씻으러 갈 땐 손 씻으러 가는 노래를 부르고, 동그랗게 모일 땐 동그랗게 모이는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면 지시나 강요가 없어도 즐겁게 몸을 움직이게 된다. 초등학교에서 만난 어린이들이 수업 시작 전 함께 노래를 부름으로써 쉽게 몸과 마음을 열고 수업에 참여함을 경험했다. 능동적인 열림으로 시작한 수업은 마칠 때까지 교사와 아이 사이의 공감을 유지하며 진행되었다. 노래를 통해 교사와 아이는 연결된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부를 노래를 고르는 것도 이제 쉽지 않다. 예전에 우리는 지금보다 더 서정적이었다. 삶의 시간, 공간은 모두 여유로워서 뜨는 해, 지는 해, 그림자, 나뭇잎의 움직임, 새들이 나는 모습, 구름이 떠가는 모습 등…. 어린왕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그런 모습들을 언제든 그려볼 수 있을 만큼 자주 바라보고 또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그러나 미디어가 장악해 어른은 물론 아이들의 여가시간까지 독차지 하더니 이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몸과 하나가 된 스마트 기기 덕분에 TV는 문제로 거론하기조차 싱거운 것이 되어버렸다. 자신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 속의 현란한 춤동작에 맞춰 따라 부를 수도 없는 멜로디를 어영부영 웅얼거리고 있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감정의 울림인 서정적인 노랫말과 단순한 가락으로 표현된 고운 노래를 어린이들이 접해보기도 전에 상품이 되어버린 노래가 폭포처럼 아이들에게 쏟아진 것이다.

지난 2월 말 스무 명 남짓한 어린 아기들과 생활하는 공간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매듭잔치가 있었다. 각 가정에서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아이들과 어른들이 어울려 보내는 시간, 때로는 칭얼거리는 아이도 있었고 아이들과 어른들의 소리로 다소 소란했다. 미리 부탁을 드렸던 푸른이 아빠의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되었다. 순간! 아이의 칭얼거림이 멈추고 눈은 빛나며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음악이 끝날 때까지 모든 이들의 눈과 귀, 그리고 온몸이 연주자에게 향했다. 기분 좋은 멈춤 속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우리 모두를 하나로 감싸주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위한 연주로, 길지 않은 곡이었지만 그곳에 있던 모두에게 놀라운 경험이었다. 행사를 돌아보는 시간, 당연히 푸른이 아빠의 연주가 화제로 올랐다. 만약 스마트 폰의 연주였다면, 오디오의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왔다면 어린 아기들까지 스스로 집중하고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

노래를 부를 때 각자 고유한 성대의 울림은 공간을 울리고 공기를 통해 듣는 이의 고막까지 그 울림을 전달한다. 악기의 연주 또한 그렇다. 디지털화 되어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지루한 울림과는 그 질을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당장 악기를 배워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신이 주신 목소리가 있다. 이제 내 성대를 울려 공간을 채우고 사랑하는 이들과 공감할 노래를 찾아보자. 잠시 잊고 지낸 어린 시절을 떠올려 철마다 불렀던 노래들을 기억해 불러보자.

송알송알 싸리 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어느새 얼굴은 미소 짓고 마음은 밝아진다.
 

안경술(발도르프교육활동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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