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공 신숭겸 1천91주기 춘향제 및 충장공 한백록 426주기 고유제
매년 음력 3월 3일·9월 9일 두 차례 열려

고려 개국공신으로 태조 왕건을 대신해 자신을 희생한 장절공 신숭겸을 추도하는 제1091주기 춘향제와 임진왜란 당시 해전에서 첫 승리를 기록한 후 전사한 충장공 한백록을 기리는 제426주기 추도제가 지난 18일 서면에서 동시에 거행됐다. 두 제례는 모두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 두 차례에 걸쳐 방동리의 각 묘역에서 거행된다.

전남 곡성 출신으로 알려진 장절공 신숭겸은 태조 왕건이 팔공산전투에서 견훤의 군사에 포위되자 왕건의 옷을 입고 견훤의 군사를 속여 왕건을 탈출시키고 자신은 끝내 전사했다. 신숭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왕건은 서면 방동리에 시신을 안장시키고 도굴을 염려해 봉분을 세 개로 만들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묘역에는 순조의 부마인 김조순이 짓고 당대의 명필이었던 자하 신위가 쓴 신도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55호)가 있다. 묘역은 강원도기념물 제21호로 지정돼 있다.

한편, 충장공 한백록은 임진왜란 첫 승전으로 기록된 1592년 5월 7일의 옥포해전에서 선봉장으로 승전을 이끈 후 합포와 적진포, 부산해전에서 대승했다. 이후 전사한 정발 장군의 후임으로 ‘부산병마첨절제사’에 특별 제수됐지만 7월 17일 남해 미조항 전투에서 왜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충장공의 나이 38세 때다. 남해 미조항에 임시 매장됐던 한백록의 시신은 노비인 득충의 공로로 방동리로 옮겨져 현재의 묘역에 안장됐다. 청주한씨 종친회는 득충의 충성심을 기려 장군의 묘 아래에 득충의 시신을 안장하고 매년 고유제 때 함께 제례를 지내고 있다.

 

 

 

 

 

오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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