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서 봄이 가장 먼저 오는 남쪽 마을에 다녀왔다. 북쪽 좌방산 자락 언덕에 자리한 한덕리를 홍천강이 에둘러 흐른다. ‘한덕’은 ‘강가의 큰 언덕’이란 뜻으로, 마을 길 곳곳에는 안말길, 윗말길, 바깥말길, 앞버덩길, 셉일길 등 정겨운 이정표가 서 있다. 한덕 안쪽이 안말, 한덕 위쪽이 윗말, 이런 식으로 언덕을 중심으로 이름이 붙었다. 셉일은 ‘섭일’이라고도 하는데 한덕리 북쪽 마을이다.

예전부터 밤나무 숲에는 부엉이가 많았다고 한다. 한덕리는 밤나무 숲이 울창했다. 그래서 부엉이마을이라 불렸다.

이맘때 한덕리로 가려면 홍천강을 따라 가는 길이 운치 있다. 남춘천IC 방향 70번 국도를 따라 덕만이터널, 광판중학교, 팔봉산유원지, 반곡 밤벌유원지 등 팔봉산로를 지나는 길이다. 특히 광판중학교 뒷동산과 홍천강변의 산자락에는 포도송이 같은 하얀 귀룽나무 꽃들이 만발해 장관이다. 홍천강변 풍경에 시선을 뺏긴 채 가다보면 두미삼거리를 놓칠 수도 있다.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개야로로 접어들어도 강물은 계속 따라온다. 머지않아 한덕교가 보이고 다리를 건너자마자 양쪽으로는 강변길이다.

강 언덕 사람들은 450년 동안 강을 향해 창을 냈고, 강을 품고 살았다. 바깥말길에 줄지어 늘어선 벚나무 꽃잎이 다 지고 잎과 붉은 열매를 키우느라 바쁠 때, 밭두렁에는 하얀 조팝꽃이 눈부시게 빛났다. 간간히 서 있는 분홍 개복숭아 꽃들도 앞 다투어 꽃봉오리를 화사하게 터뜨렸다. 밭을 간 후 배나무 농장 옆으로 지나는 농부의 밀짚모자에 배꽃이 포르르 날렸다.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농부는 젊은 시절 도시로 나가 잠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다. 성큼성큼 걷는 발걸음과 한눈에도 건장해 보이는 농부를 보니 한덕리도 생기 있는 농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가로는 하얀 자갈밭이 펼쳐져 있는데, 아이들과 캠핑 나온 가족, 혼자 낚시를 하는 아저씨와 연인들, 아직 많지는 않아도 봄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오래 전부터 이 강가에서는 마을사람들이 천렵을 했고 이웃마을 사람들도 놀러왔지만, 이제 마을사람들은 농사일과 마을체험사업으로 한가로이 즐길 여력이 못된다.

마을 입구에는 강 언덕 도농교류체험관이라는 제법 큰 건물이 있고 마을 안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섶다리와 큰 비닐하우스가 여럿 보이고 3층 건물의 식당과 숙소가 있다. 단체도 개인도 숙소와 체험활동이 가능하다. 1박 원룸형은 10만원, 투룸형은 25만원이다. 강 언덕 부엉이 마을 사무장 강수식 씨는 인제에서 살다가 10년 전에 한덕리에 정착했다. 농사도 지으며 마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숙소 1층은 식당이나 세미나실로도 이용하고, 섶다리 앞 큰 비닐하우스는 메기 잡기를 비롯해 전통놀이 등 다양한 체험공간이었다.

특히 섶다리가 눈길을 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지난 2월부터 제작했다고 한다. 강마을 사람들은 1998년 한덕교가 생기기 전에는 갈수기인 겨울과 봄엔 섶다리를, 여름과 가을엔 나룻배를 이용해 외부와 소통했다. 강 건너는 홍천 모곡이다. 아이들은 섶다리를 건너거나 나룻배를 타고 모곡초등학교와 한서중학교를 다녔다. 1971년 발산초등학교 한덕분교가 생겼으나 1997년 모곡초등학교로 통폐합되었다. 다리가 생겼지만 아이들이 없어진 것이다.

다리가 생기고 나서도 2011년이 되어서야 시내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한덕분교 옆에서 낯선 노란버스를 만났다. 오지마을의 교통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춘천시가 전세버스 업체와 계약해운영하는 로맨틱 버스란다. 어른아이 구분 없이 현금 1천원이며, 오전 7시와 12시, 오후 2시, 이렇게 세 번 운행하지만 시내버스보다 더 편리하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이 주로 많이 이용하는 곳에 정류장을 배치한 맞춤형이기 때문이다. 한덕리는 춘천에 속하지만 홍천을 거쳐 마을로 들어오기 때문에 이들의 생활권은 여전히 홍천이다. 전기나 우체국은 아직도 홍천 관할이다.

섶다리를 건너 마을 안쪽으로 몇 걸음 옮기니 벽화가 그려진 한 칸짜리 작은 집이 있었다. 대학생들의 봉사활동 같은 벽화 수준이 아니었다. 꽃나무 한 그루와 소와 소의 등 위에 앉은 새 한 마리. 선이 간결하고 세련되면서도 벽의 엷은 황톳빛과 잘 어울렸다. 어쩐지 예사롭지 않아 문을 두드렸다. TV 소리는 크게 나는데 인기척이 없다. 어쩐지 독거노인일 거란 생각과 귀가 좀 어두운 것 같아 실례인 줄 알면서도 문을 열었다. 불도 켜지 않고 침침한 방에서 예상보다 세련된 할머니 한 분이 나온다.

“내가 우리 손주들 밥해주러 춘천으로 나가고 나서 애 아범이 집을 빌려줬는데, 성남사람이라든가 잠깐 요양차 왔던 사람인데, 그 사람이 그려놓고 떠났어. 화가래. 잠깐 들어왔다 갈 테야?”
하며 반갑게 맞는다. 열아홉에 시집와서 60년을 여기서 살았다. 6남매 중 자식 하나를 잃고, 나이 마흔하나에 홀로 됐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 제일 미인이신 것 같은데, 그렇게 젊은 나이에 재가할 생각 안 해보셨어요?”

“난리 통에 폭격 맞아 집이 다 부서지고 거지가 되었어도 내가 양반 자손이야. 그래, 지금 이리 애들 다 키워 다들 시집장가 가고 손주들도 다 봤으니 난 걱정거리 하나도 없어.”

서울 서대문이 고향인 할머니는 열 살 무렵 6·25를 겪었다. 피난이라고 해야 고작 수원까지 갔다가 영등포로 와서 부모님이 일을 나가는 바람에 동생들 건사하며 살림을 도맡아 했다. 식구가 많으니 부모님이 힘에 부쳤는지 막내를 이웃집에 입양 보냈는데, 그 집안이 모두 해외로 가버려 그 이후 영 소식을 모른다고 했다.

“왜 안 보고 싶겠어, 그때 막내가 여덟 살이었어. 보고 싶지. 소식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할머니는 서울에서 설악까지 버스를 타고 널미재를 넘어 모곡을 지나 나룻배를 타고 지금의 한덕강을 건넜다. 너무도 멀어서 친정도 못 갔다. 남편과는 14년 차이였는데, 위암으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홀로 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지어 5남매를 길러냈다. 그 세월을 어찌 지냈을까 싶은데, 할머니는 담담하게 웃는다. 시간은 흔적을 남기기 마련인데 불편한 할머니의 무릎에 앉은 시간은 야속하지만, 생을 돌아보는 담담한 주름 속 시간은 고맙기까지 하다. 우두커니 TV나 친구 삼던 지루한 일상에서 모처럼 즐거웠던 것일까? 엄나무 새순을 꺾어 마루에 슬그머니 가져다 놓은 아들의 정성을 나누어준다.

할머니 댁에서 멀지않은 언덕에 멋진 느티나무가 있다. 한덕리 마을회관 앞으로 난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그 자태가 우아한 느티나무를 만날 수 있다. 120년 정도 된 이 느티나무는 둘레가 4미터나 된다. 예전엔 마을사람들이 삼복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이 느티나무 그늘에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누며 친목을 도모했다고 한다. 이제 연둣빛 새순들이 피기 시작하고 가지 사이로 까만 머리에 하늘색 꼬리가 멋진 물까치가 날아들었다.

안말길을 지나 셉일길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 길은 발산리로 이어져 있다. 처음 한덕리를 찾았을 때는 이 길로 한참을 돌고 돌아 마을을 찾아왔다. 발산리에서 한덕리로 오는 발산한덕길은 임도로, 한치고개와 셉일고개를 넘어오는 길이다. 이 길은 강촌IC 부근에서 안말까지 약 11킬로나 되는 남쪽으로 난 산길이다. 발산한덕길 초입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흙집이 있다. 이영자 할머니가 홀로 사는데, 마침 시어머니를 방문했다가 나서는 며느리를 만났다.

“어머니가 86세인데, 홍천 팔봉에서 시집오셨어요. 이 집은 지은 지 50년쯤 되었는데, 그때는 담배농사를 지어 담뱃잎을 말리던 건조장도 있었대요.”

나도 아주 어릴 때 담뱃잎 건조장을 딱 한번 보았던 기억이 났다. 황토흙에 볏집을 썰어 반죽한 다음 벽돌형태로 굳혀서 쌓아 올렸다. 건조장이 없던 친구네는 비가 자주 오는 여름철 내내 마당을 지켜야 했다. 우리는 넓은 담뱃잎을 엮은 긴 타래들 사이로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더랬다.

옛 추억을 뒤로 하고 산길로 접어들면 오른쪽으로 난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셉일고개를 넘어간다. 비포장 구간이라 속력을 낼 수가 없지만, 30~40분쯤 가다보면 계곡은 보이지 않고 길 왼쪽으로 굽이쳐 흐르는 홍천강을 내려다보는 풍광에 멈추게 된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숲길과 길가의 작은 풀꽃들이 발목을 잡기도 한다. 오르막 산길이 끝날 무렵 산허리를 돌아가면 잘 지어진 집 두어 채가 있고, 오솔농원이 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는 게 놀랍다. 마침 부부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안주인은 아직 서울과 농장을 오가며 지내고 바깥주인은 동대문에서 사업을 하다가 현직에서 물러나 이곳에 상주하고 있다. 사과도 심고 벌도 키운다. 부부는 건강한 생활을 위해 먹을거리 대부분을 직접 재배한다. 과수원에는 사과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솜씨 좋은 주인장의 조경수도 당당히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산의 7부능선쯤 되는 높이라 시야가 시원스럽게 탁 틔어 멀리 용문산까지 조망되었다. 저 멀리 산 능선들이 포개지고 발 아래 홍천강과 마을들이 개미마을처럼 보인다. 직접 수확한 꿀맛도 볼 겸 5월에 꿀을 사러 오겠노라 예약도 했다. 지난 가을 저장해 두었던 사과 중 흠집이 있어 팔지 못하고 먹기 위해 남겨두었던 사과 한 봉지를 건넨다. 사과를 베어 불면서 다시 고갯길을 서둘렀다.

마을에 들어서자 그림자는 길어지고 한덕강에 노을이 붉다. 다음엔 작정하고 아침 일찍 이 산길을 걸어 안말의 느티나무 아래에서 점심을 먹고 마을에서 2시에 출발하는 로맨틱 버스를 타봐야겠다.

김예진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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