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과 지방선거에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 서면에는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페이스북을 여니 저마다 앞다투어 꽃 잔치를 벌이느라 요란했다. 순백으로 물결치는 메밀꽃의 향연 속에 붉은 양귀비꽃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흰색과 붉은색의 극단적 공존 속에 느껴지는 안도감이라니!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은 〈메밀꽃 필 무렵〉에서 메밀꽃을 “소금을 뿌린 듯”이라고 표현했다. 달빛에 그 광경을 보노라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 척박한 시대에도 메밀꽃은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동아시아의 북부 및 중앙아시아, 바이칼호, 만주, 아무르강변 등이 원산지인 메밀은 추위에 잘 견디고 생육기간이 짧아 땅이 거친 곳에서 주로 심은 대표적인 구황식물이었다. 지금은 봉평이 메밀의 주산지처럼 알려져 있으나 실은 제주도에서 가장 많이 심는다.

나는 고향이 인제라 어릴 때부터 메밀을 많이 보았고, 겨울이면 동네사람들끼리 번갈아가며 막국수를 눌러먹는 풍경이 익숙했다. 뚝뚝 부서지듯 끊어지는 막국수에 양념이라고는 그저 조선간장뿐이었다. 게다가 맷돌에 갈아서인지 가는 모래가 씹혀 막국수라면 치를 떨었다. 아직도 막국수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까닭이다.

대학에 오면서 막국수가 춘천의 대표적인 먹거리라는 것을 알고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나의 호불호를 떠나 어쨌든 막국수와 닭갈비는 누가 뭐라 해도 춘천의 대표 먹거리다. 그러나 대표 산업은 아니다. 막국수집과 닭갈비집이 즐비하지만 요식업 외에는 다른 산업이 없다. 농민이 땅에서 유리돼 묵는 땅이 많아도 메밀을 심지 않는다.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춘천은 전형적인 도농복합도시다. 농촌에 메밀을 심어 춘천의 대표작물로 육성하면 농민도 좋고, 가공 및 유통과정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식량자급률에도 일조할 수 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춘천막국수의 원재료가 90% 이상이 중국이나 미국에서 수입되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가격경쟁력이 없다는 것은 핑곗거리가 못 된다. 불필요한 토목공사에 쏟아 붓는 엄청난 예산을 농민에게 돌려준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늘 그렇듯이 문제는 발상의 전환이다. 상상해보라! 메밀 하나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은빛으로 반짝이는 북한강가에 소금을 뿌린 듯 달빛에 숨마저 막힐 것 같은 저 메밀꽃의 향연은 호사스런 덤이다. 그것을 어찌 레고랜드나 스카이워크, 또는 삼악산 로프웨이에 비할 수 있을까.

마침 새 시장이 춘천을 문화특별시로 만든다고 호언했다.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니라 생명과 평화의 문화가 산업으로 융합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단서가 어쩌면 메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농촌이 살아야 학교가 살고, 농촌이 살아야 도시가 숨 쉴 수 있다. 그래야 떠나간 사람들이 돌아오고, 오지 말라고 떠밀어도 사람들로 넘쳐나는 춘천을 기대할 수 있다. 다시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골골마다 울릴 수 있다. 나는 저 흐드러진 메밀꽃을 보며 춘천의 미래를 본다.
 

전흥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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