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회를 맞은 춘천연극제가 춘천시민들을 대상으로 사전공모를 통해 결혼 10주년 이상이 되는 부부들 중 5쌍을 선정해 ‘리마인드웨딩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리마인드 웨딩’은 최근 일반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기념행사다. 춘천연극제는 콘서트와 함께 메이크업과 촬영, 이후 기념사진 액자까지 모두 무료로 제공했다. 첫 행사였고 홍보가 미흡했음에도 2배수 가까운 신청자가 있었다. 결혼연차가 많고 감동적 사연이 있는 신청자가 우선적으로 선정됐다.

기름집 총각과 반찬가게 처녀의 43년 부부인생

토크콘서트 첫 날 주인공인 김호동(65세)·김예성(65세) 부부는 결혼 43주년을 맞은 이번 행사의 최고령 부부였다. 남편 김씨는 집안 형편이 가난해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진학을 포기하고 낭만시장 기름집에서 일하게 되었다. 열아홉 살이 될 무렵 옆 반찬가게에 또래 아가씨가 일을 하러 왔다. 첫눈에 반한 청년 김호동의 끈질긴 구애 끝에 두 사람은 결국 육림랜드에서 한복을 입고 결혼식을 올렸다.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은 조촐한 의식이었다. 그 후 두 아들과 딸을 낳았고 손주는 일곱이나 생겼다. IMF를 만나면서 얻게 된 빚을 15년 가까이 갚는 동안 아내도 춘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청소일을 해야 했다. 너무 힘든 시절 아내는 늦은 밤이 되면 몽유병처럼 춘천 시내를 헤매고 다녔다 한다. 남편 또한 죽을 결심을 하고 산에 올랐다가 너무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는 겨우 산을 내려왔다. 큰 며느리를 베트남에서 데려와 딸처럼 여기며 살뜰하게 보살폈다. 며느리는 당차고 생활력도 강해서 운전면허도 따고 미용사 자격증도 따서 지금은 미용사로 일하고 있다. 그 며느리가 이번 행사 참가신청서를 써냈다고 한다.

결혼 17년차 남남북녀의 인생역정

 

 

둘째 날은 17주년을 맞은 남남북녀, 조경욱(57세)·김나영(49세) 부부였다. 함흥이 고향인 김나영 씨는 스무 살부터 7년간 군대생활을 마치고 북한에 몰아닥친 지독한 가난을 못 이겨 압록강을 헤엄쳐 탈출했다. 중국 광저우에서 월급을 많이 준다는 신발공장 식당에 취업해 만난 사장님이 지금의 남편이다. 하지만 7년 후 위기가 찾아왔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중국정부가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색출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그들 사이에 태어난 7살 딸이었다. 북송 위기에 처한 김씨는 7살짜리 딸의 손을 붙잡고 걸어서 베트남으로, 그리고 다시 캄보디아까지 가서 한국대사관의 문을 두드렸다. 남편 조씨는 아내와 딸을 보내놓고 연락이 끊긴 3~4개월 동안 한국에서 술로만 살았다. 그렇게 사선을 넘어 한국으로 온 김씨는 춘천에 정착하게 되었다. 딸은 어엿한 고등학교 2학년으로 성장했고, 김씨는 경희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동국대 북한학과에서 통일정책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리고 통일강사로 강연을 소화하고 있다. 꿈은 당연히 평화통일이라 했다.

결사반대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한 띠동갑

셋째 날은 부모님 반대를 뚫고 행복을 쌓고 있는 띠동갑인 정두환(51세)·박태양(39세) 씨 부부였다. 아내 박씨는 영국에 플루트 유학까지 다녀온 스물일곱 살이었고 남편은 평범한 중소기업에 다니던 서른아홉 살이었다. 신부의 부모 입장에서 당연한 반대가 따랐다. 정씨는 용기를 내 그녀의 가족행사에 무턱대고 참석했다. 그러던 중 장모님이 될 분을 한 번 차로 모시면서 뒷좌석 차문을 열어드렸는데, 완고한 남편에게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호의에 마음 문을 연 장모님 덕에 마침내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다. 행복한 시간이 흐르고 넷째 아이 출산 직전 위기가 왔다. 태아에 눌려 급성 방광염이 왔는데 전신마취 수술을 두 번이나 해야 했다. 산모나 아이 중 누구 한 사람은 잃을 수도 있는 상황. 정씨는 차라리 자기 생명을 줄 테니 두 사람을 모두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남편은 수술을 감행하자는 대학병원에서 수술 없이 치료해 보자는 작은 산부인과로 병원을 옮겼다. 다행히 아내는 수술 없이 완쾌했고,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나 현재 10개월이 되었다.

도의원 낙선 부부의 좌충우돌 인생살이

넷째 날은 이번 지방선거에 도의원으로 출마해 낙선한 정치인 엄재철(53세)·지은희(51세) 부부였다. 24주년을 맞은 부부는 토크콘서트가 열리던 그날, 비록 낙선했지만 진보정당으로 18% 득표율을 기록한 선전을 자랑스러워했다.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한 강원도에서 진보적인 사회활동가 혹은 정치인으로 살아가는 힘겨움은 예견되어 있었다. 사업실패로 빨간 딱지도 붙었었고, 이런 저런 형편으로 이사도 자주 다녀야 했다. 선거 때 자료를 떼다 확인해보니 스무 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한다. 그래서 부부는 스스로들을 ‘부부 익스프레스’라고 했다. 누가 결혼을 꿈과 신념의 무덤이라고 했던가! 두 사람은 아직도 굳건히 서로의 꿈과 신념을 소중히 지켜주고 있었다.

결혼 18년, 아직도 애틋한 그들

토크콘서트의 마지막 날, 다섯 번째 주인공은 춘천의 2인조 그룹 ‘훈남스’의 보컬인 박승훈 씨 부부였다. 박승훈(46세)·연규빛(47세) 부부는 18주년을 맞으면서도 아직도 서로 애틋하다고 자랑했다. 데이트 시절부터 여자는 낮에 직장에 다니고 남자는 밤에 노래를 하는 직업이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데이트를 할 수 없었다 한다. 박씨는 첫 데이트에 춘천 명동에서 당시로선 비싼 10만원 상당의 외투를 선물하고는 아내를 버스에 태워 돌아가신 어머니 묘에 데려가서 인사를 시켰다. 박씨는 스스로를 ‘생계형 뮤지션’이라고 소개했다. 음악이 돈이 되고, 그래서 나도 가족도 행복한 인생을 꿈꾼다 했다. 아내 연씨는 지금도 힘들면 일부러 남편의 공연장에 가서 에너지를 보충한다고 했다. 남편의 노래로 힘을 얻는 아내, 그리고 고2 아들, 중2 딸이 불과 한 달 전까지 한 방에서 엄마랑 아빠랑 함께 잤다는 결속력 최고의 가족이었다. 박씨는 현재 춘천 뮤지션 25명 정도가 소속된 ‘뮤직펙트’라는 회사 대표이기도 하다. 후배 가수들과 함께 춘천 뮤지션들의 활동을 활성화 하고 권익보호도 힘쓰는 데 회사의 목적이 있다고 했다.

선욱현 시민기자(강원도립극단 예술감독)

“우리 다시 결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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