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존재하는 곳, 사람이 있는 곳에는 이야기가 있고 신화가 있다. 사람의 호기심은 상상의 날개를 펄럭이며 무한한 세계를 들락거린다. 신화는 끊임없는, 끝없는 인간정신의 상징이고, 상징은 인간 영혼의 부단한 생산물이다. 신화는 장엄하고 무시무시한 신곡처럼 온전하게 피어난다. 그러나 제때 나고 죽는 자기중심적, 투쟁하는 자아를 응시하는 정체불명의 탁월한 기쁨에는 창조자의 무자비함이 가득하다. 신화가 우리 일상의 구조인 이유다.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은 어니스트 클라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모험영화다. 이 영화는 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의 여정 단계를 거친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는 동서양의 고대, 그리고 현재에서 채집된 신화와 민간전설이 한 곳에 모여 있다. 거기에는 삶의 길잡이로 삼아온 영웅들의 삶이 방대하면서도 놀라우리만치 일정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고 그 유사성은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상징은 스스로 입을 열고 영웅은 언제, 어디서든 탄생할 수 있다.

2045년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사람들은 보안경을 끼고 제각각 가상세계 ‘오아시스’에 열중하고 있다. 오아시스에서는 상상한 모든 게 이루어진다. 원하는 캐릭터의 변신은 물론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같고 모두가 탈출을 꿈꾼다. 층층이 쌓인 위험천만한 트레일러 빈민촌. 주인공 웨이드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이모네 집 꼭대기 세탁실에 얹혀산다.

어느 날, 온라인 게임 오아시스 창시자인 할리데이가 죽는다. 그리고 죽기 전에 남겨 놓은 그의 유언장이 공개된다. “3개의 열쇠를 찾아라. 미션을 통과해 ‘이스터 에그’를 찾는 사람에게 오아시스의 소유권과 전 재산을 상속한다”는 것. 1980년대 대중문화 속에서 실마리를 찾는 두뇌게임의 시작이다. 억만장자가 내건 일명 이스터 에그 찾기는 복권당첨 같은 꿈이다. 50년이 흐른 시점에서 1980년대 대중문화는 열풍에 휩싸이고 할리데이의 유산은 세상을 바꿔 놓는다. 18살 웨이드는 열쇠 찾기 레이싱에 참가하기 위해 오늘도 오아시스에 접속한다.

영웅은 필연적이다. 경계 너머에는 미지의 모험과 위험이 가득하다. 오아시스를 구하는 건 웨이드의 소명이자 영웅으로의 부름이다. 그는 정신적 스승 할리데이와 아르테미스, H, 다이토, 쇼 등 특별한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모험을 떠난다. 모험은 일상의 가치와 논리에서 벗어난다. 영웅은 시험을 통과하며 새로운 규칙을 배운다. 자신을 죽이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고래 입속으로 돌진한다. 순순히 허락되지 않는 영웅의 여정에서 협력자와 방해자, 적대자의 추격전 또한 필연적이다. 거대 기업 ‘IOI’의 수장 소렌토의 야망은 웨이드를 저지한다. 그리고 이모의 컨테이너를 폭발시킨다. 전부를 차지하려는 IOI와의 전쟁. 아바타가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 영웅은 미션을 싸고 있는 장막을 깨고 승리한다. 웨이드 퍼시발은 자신보다도 대의와 친구, 그리고 사랑을 지킨다. 아르테미스의 키스를 받고 오아시스의 새 주인이 된다. 영웅의 탄생이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없다. 신화는 시대와 상황을 막론하고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시간을 초월한 이 환상의 비밀은 변화하고 재생된 다른 형상이다. 영웅은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주 난관에 부딪히고 많은 갈등을 겪는다. 그때 우리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꿈이나 예감, 직관이나 영감은 무의식의 신호다. 신호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 소명은 곧 부름. 우리의 삶이 고통스럽고 힘들다면 우리는 어떤 부름으로 인해 혹독한 영웅으로의 시련 과정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실은 무섭고 고통스러운 곳이지만 따듯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왜냐면 현실이 진짜니까.

금시아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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