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조건은 단 한 가지, 오직 헌신이다”라고 존 멕스웰은 말한다. 그는 《리더의 조건》에서 리더십은 과정의 법칙에서 형성되고, 매일매일 오랜 기간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에게서 발현된다고 한다.

최부(崔溥)의 《금남표해록(錦南漂海錄)》이 탄생하기까지는 생사를 넘나드는 여정의 연속이었다. 요즘의 교통망과 통신망을 상상할 수 없던 때의 바다는 죽음의 모험일 수밖에 없다. 최부의 책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일본 승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함께 중국 역사상 3대 기행문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제주에서 추쇄경차관(죄를 지은 자들이 제주도로 달아난 경우가 많아 이들을 잡으러 간 벼슬)으로 재직하던 최부는 부친상을 당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제주 앞바다에서 표류된다. 그리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배 안의 소요와 불신, 배고픔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명나라 저장성에 당도한다. 엄격했던 조선시대의 신분사회. 그런데 표류하는 배에서 신분이 다른 44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14일 동안 어떻게 한 명도 죽지 않고 살았을까? 최고 상관인 최부는 자신의 목숨이나 아랫것들의 목숨을 똑같이 소중하다고 여겼다. 그는 신분과 계급에 상관없이 가장 위급한 사람부터 먼저 구했고, 비상식량도 다 떨어져 오줌을 먹는 등의 아비규환 속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했다고 한다.

최부는 해적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도 하고 왜구로 몰아 출세하려는 명나라 관리들의 음해와 무고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겪는다. 하지만 그의 문장과 학식을 인정한 중국 지식인의 존중으로 조선 관인으로서의 공식적인 예우를 받으며 북경으로 호송된다. 또한 최부는 상중(喪中)의 예절을 고수해 명나라 황제 앞에서도 부친상 기간이라며 끝까지 상복을 벗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중국 여행기는 대체로 외교적 차원에서 중국을 왕래한 사신들의 견문기록이다. 주로 그 한계선도 북경에 머물렀다. 그러나 《표해록》은 당시 조선인의 내왕이 전혀 없던 중국의 강남지방에까지 표류하다 귀환한 체험기록이다. 《표해록》에는 중국 강남지역의 문물과 대운하 제도 등 세세한 견문의 관찰이 자세하게 사실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최부는 표류된 지 136일 만에 8천800여 리의 중국 남북을 관통하며 환국한다. 그는 성종의 왕명으로 일기 형식을 빌려 그간의 일들을 5만여 한자로 기록했다. 바로 이 책이《표해록》이다. 최부는 《동국여지승람》과 《동국통감최부》의 편찬에도 참여한 뛰어난 학자였다. 주로 간관으로 일하고 홍문관 교리와 사헌부 지평과 감찰 등을 지낸 최부는 연산군을 향해 소신발언도 굽히지 않았다. 곧고 강직한 청백리였던 그는 무오사화 때 함경도 단천으로 유배를 갔고 결국 연산군 10년(1504년) 갑자사화 때 참형을 당했다. 그의 나이 51세였다.

무더운 여름방학 동안 자녀들과 함께 최부의 표류행적을 더듬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선조의 리더십에 매료되는 것도 멋진 피서의 한 방법일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금시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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