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뻘을 지키는 농부 김창옥

소양정에서 바라본 춘천의 뛰어난 팔경(八景) 중에 우야모연(牛野暮煙)이 있다. 우야모연은 우두 들녘의 밥 짓는 연기를 말한다. 밥 짓는 연기는 이젠 아련한 추억이 되었지만, 서쪽 하늘 노을이 아름다운 날 우두온수지 너머 너른 밭들을 바라보면 옛 농촌 풍경에 대한 향수에 젖는 일은 어렵지만은 않았다. 오래 전부터 우두들녘은 농사짓기에 좋은 땅이었다. 지금도 춘천에서 나는 농산물이라면 소양강토마토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양강토마토의 대표적인 산지 또한 우두들녘이라고 할 수 있는 신사우동 일대의 하우스에서 재배되고 있다. 하지만 우두동 일대가 개발되고 농토 위에 점차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는 이런 향수조차 옛 일이 되어가는 듯 보인다. 사농동에서 자라고, 그곳에서 20여개 동의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는 김창옥(56세) 농부를 만나 우두뻘의  지나온 시간과 현재를 들어보았다. 

우두뻘에서 자라 20여개동의 토마토농사를 짓고 있는 김창옥 농부
우두뻘에서 자라 20여개동의 토마토농사를 짓고 있는 김창옥 농부

옥산포 오이에서 소양강 토마토로

한참 방울토마토를 출하하며 토마토 상자를 트럭에 싣고 있는 김창옥 씨를 사농동 방울토마토 하우스에서 만났다. “사농동을 예전에는 옥산포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토마토를 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옥산포 오이가 무르지 않아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오이는 자주 약을 쳐야하고, 일일이 따야하는 등 인력이 많이 필요해 지금은 토마토 농사만 짓고 있습니다.” 김창옥씨는 사농동 일대에서 5,000평 정도의 땅에 21개의 하우스에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다. 토마토는 2월에 심어 7월까지 출하하고, 다시 7월에 심어 1월까지 출하하는 이모작 형태를 취하고 있다.

토마토는 벌이 수정을 한다고 한다. 호박벌이라고 큰 벌로 수정을 하는데 네덜란드에서 수입해 온다. 한국산 벌도 있는데 수명이 짧은 단점이 있다. 네덜란드 산은 값은 비싸지만 수명이 길다. 벌은 귀소본능이 있어 하우스 2동에 한 통씩 풀어놓으면 자유롭게 오가면서 꽃가루를 나른다고 한다. 그동안 식탁에 자주 오르면서도 무심했던 토마토의 숨겨진 이야기가 재미있다.

가구회사 ‘선퍼니처’의 대리에서 농부가 되다

김창옥 씨는 어떻게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까? 사농동에서 자란 김창옥 씨가 농사를 짓는 것은 당연해 보였지만 의외의 답이 나왔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어려운 형편에서 학업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일찍 고향을 떠났다 서울서 취업을 하고, 명절에 고향을 찾은 선배들이 너무 멋있어 보이는 거예요. 옷도 세련되게 차려입고, 행동거지도 멋진 것 같고요.” 학교를 그만두고 무작정 따라나섰다.

서울에서 3년 직장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놀러갔던 인천에서 구인광고를 보고 친구들이 같이 이력서를 냈는데 혼자만 합격했다. 그 당시 가구회사로 유명했던 ‘선퍼니처’에서 15년 정도 근무했다. 선퍼니처에서 칠쟁이, 즉 가구도색으로 성실성을 인정받았다. “가구를 칠하는 작업이 아무래도 몸에 좋지는 않지요. 게다가 생산직인 기능직 직원은 대리 이상의 승진을 보장 받기 힘들었습니다.” 김창옥 씨는 명절 때마다 고향에 오면 농사짓는 친구들을 눈 여겨 보고, 농사를 꼼꼼히 살펴보면서 그 당시로는 적지 않은 월급을 포기하고 새로운 미래를 계획했다. 인천에 있는 아파트를 전세주고 그 자금을 바탕으로 사농동에 1천2백 평 농지를 임대하여 하우스 6동을 지었다. 그 당시 나이 32세였다.

거짓없이 보답해 주는 땅이 힘이었다

오이를 3월 달에 심으면 5월에 수확을 했다. 처음 오이 세 짝을 수확했는데 한 짝에 만원씩 3만원을 벌었다. 차츰 수확량이 늘어나다보니 거짓 없이 보답해주는 농사에 매력을 느꼈다. “직장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 년에 5백만 원 정도 저금하기 빠듯했는데, 저는 아이들도 어리고 생활비도 많이 들어가지 않다보니 일 년 농사짓고 천만 원 정도 저금할 수 있었습니다. 삼년 정도 3천만 원 정도 모았지요. 동네사람들이 너는 부지런하니까 하우스를 늘리라고 권유해서 17동으로 늘렸습니다.” 농사짓고 10년 만에 서면에 땅 2천3백 평을 샀다. 땅을 사고 매일 서면에 가서 땅을 보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종종 막걸리를 사 들고 가 동네사람들과 친분도 쌓아 그곳에 살고 있지 않지만 한동네 사람이 되었다.

농산물 값은 10년째 제자리에

농사짓는 환경이 점차 변해가기 시작했다. 원부자재가 그동안 많이 올랐는데 농산물 값은 10년 넘게 항상 그 자리였다. 쌀도 예전에는 경쟁력이 있었는데 가격이 없다보니 논농사 짓던 곳에 하우스가 많이 들어섰다. 정부에서는 농민을 달래기 위해 하우스에 보전을 많이 해줬다. 하지만 그 정책도 시와 군 단위의 지원책이 달라 춘천 같은 시 단위에서는 하우스 보전과 자부담이 50대 50, 면단위는 70대 30의 비중이어서 사농동 같은 시 단위 농업에는 상대적으로 불리했다.

“농산물 가격이 올라가면 매스컴에서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값이 비싸다는 것은 생산량이 그만큼 적다는 것입니다. 농부들도 그렇게 갑자기 농산물 값이 갑자기 오르는 것같이 변칙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농산물은 항상 기후변동에 따라 예측이 불가하고 가격 등락폭이 큰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모든 물가가 상승하는데 농산물 값은 그대로입니다. 정부에서 가격보상을 해주면 농사를 계속 천직으로 알고 열심히 하겠는데….” 농업정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어디 이뿐이랴. 말꼬리를 흐리는 김창옥 씨의 말에서 더 큰 절실함이 느껴진다.

그나마 재해보험이 생겨서 다행이다

지금은 토마토 값이 너무 좋다고 한다. 한 상자에 4천 원 정도 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4만여 원이다. 하지만 한동안 반짝일 뿐이다. 여름에 폭염에 하우스 전 동에 심은 토마토 대가 말라비틀어진 채로 뒤집어엎던 그 아픈 마음은 보상받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나마 재해보험을 통해 충분하지는 않지만 보전을 받았다. 정부에서 요즘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들여온다고 하는데 그것은 농사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일까? “우리 같은 경우는 일 년에 한 두 달도 안 쉬고 계속 농사를 이어갑니다. 계절 근로자의 경우는 세 달 정도 있다 가기 때문에 좀 힘들지요.” 좀 더 현실성 있는 대책이 필요한 부분이다.

하우스농사에 난방은 필수이다. “농사난방은 면세유인 등유로 하고 있습니다. 리터당 단가는 싸지만 화력이 좋지 않아 결국 등유하고 경유하고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면세유로 눈에 띄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농민을 대상으로 생색내기에 그친다는 말일 것이다.

농업정책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김창옥 씨는 직접 농사를 지으며 유통과정이 전면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직거래도 시도해봤지만 대량생산이라 직거래 자체도 힘들었어요. 이제는 농사를 통해 커다란 수익을 기대하기는 힘들고 내 인건비가 보장되는가를 생각해야 할 만큼 어렵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스마트 팜에 대해서는 “그 계획이 어떤 것인지는 자세히 모릅니다. 계획대로 수출을 한다든지 하면 크게 문제가 없는데 내수로 돌아온다면 과잉생산이 될 수밖에 없고, 시설에서도 현격히 차이가 나서 지금 농사짓고 있는 농부들에게 당연히 불리한 구조입니다.”라는 말에서 그의 시름이 읽힌다.

김창옥 씨는 농업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 없는 한 이제 우두뻘을 지키는 마지막 농부일지도 모른다. 빨갛고 알찬 토마토와 굵은 토마토 대, 단정하게 정돈된 김창옥 씨의 하우스 안은 밖에서 듣던 소문대로 김창옥 씨가 얼만큼 부지런한 농부였는가를 말해 준다. 일전에 들었던 ‘작물은 주인 발자국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문득 생각났다.

(사진 왼쪽부터) 출하를 기다리고 있는 ‘소양강방울토마토’, 김창욱 씨가 키우는 새, 한창 수확 중인 방울 토마토.
(사진 왼쪽부터) 출하를 기다리고 있는 ‘소양강방울토마토’, 김창욱 씨가 키우는 새, 한창 수확 중인 방울 토마토.

그는 하우스 한쪽에 파랑새, 잉꼬, 카나리아 등 십여 종의 새, 백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젊은 시절 기숙사 옥상에서 몇 백 마리의 비둘기를 키우다 그것에 관심을 갖던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니, 평생 이어온 새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군 장교인 아들과 사회복지사인 딸을 두고 있는 김창옥 씨는 직업군인인 아들이 예편을 하고 본인도 농사를 지을 여력이 다하면 키우고 있는 새들과 서면으로 가서 살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동안 땅을 지키고 땀 흘리며 살아온 김창옥 씨가 서면의 넓은 땅에서 새를 날리며 또 다른 인생을 꿈꾸는 모습을 그리는 것은 잘 익은 토마토를 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원미경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