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 (문화비평가)
이정배 (문화비평가)

얼마 전 원로 무용인의 공연을 보기위해 나선 적이 있었다. 공연장에 도착하는 내내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아직도 무대에 오르려는 건 행여 욕심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많았다. 솔직하게 젊은 무용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괜한 마음으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의 걱정은 기우(杞憂)였다. 그가 무대 위로 오르는 순간 공연장의 공기는 일순 멈추는 듯 했고, 그의 첫 동작과 함께 모든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작의 흐름에 따라 일렁이던 관객의 마음도 곧 그의 작은 떨림에 같이 호흡했다. 내미는 손끝을 따라 모든 시선은 집중되었고, 가리키는 저 먼 공간을 모두가 응시했다. 

숨 막히던 순간순간을 잊지 못한 나는 무용스승을 찾아갔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 한국무용의 움직임인데 무엇 때문에 그의 동작에 몰입하게 되었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사실 진심으로 알고 싶었던 것은 한국무용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와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무엇에 초점을 두어야하는지 하는 것 때문이었다. 

나의 속내를 갈파한 무용스승은 한국무용의 핵심을 짚어주었다. 

“흔히 한국무용의 특징을 선(線)에 있다고 알고 있다. 물론 서구 무용과 비교해볼 때, 우리 무용의 선이 독특한 것은 사실이다. 서구의 건축이 대개 각(角)이 지고 수직적인 것에 비해 우리 건축물이 수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건축물마다 유연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무용의 전부는 아니다. 왜냐하면 더욱 중요한 것이 호흡에 있기 때문이다. 숨을 들이켜 하늘과 사물의 기운을 빨아들이고 내 몸에 그것을 운행하게 하다가 뱉어내 기운을 공유케 하는 연속과정에서 리듬도 일어나게 된다. 그 리듬에 의해 혼이 깨어나고 더불어 사물이 깨어나 무수한 의미들을 창조한다.”

군무에서 동작의 통일성을 위해 훅훅하는 숨소리를 내는 경우를 종종 본다. 특히 배경음악이 잠시 멈추는 경우나 동작에 집중시키기 위해 일부러 배경음악을 소거시킨 경우, 리더가 호흡 소리를 통해 무용수들의 동작을 일치하게 하려는 수단이다. 때론 그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원로 무용인의 움직임이 왜 그렇게 다르게 보였는지 확연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호흡에 있었다. 들숨과 날숨의 선명함이 리듬을 만들어냈지만, 다른 무용수의 호흡에선 자연스럽게 숨 쉬고 있다는 느낌만 받았다는 걸 알았다. 호흡에 의한 리듬이 공연장의 공기를 춤추게 만들었고 그것이 관객의 마음까지 흔들었던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진동한다고 현대물리학은 규정한다. 그래서 하이젠베르크는 ‘우주는 물질이 아니라 음악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약간 비틀고, 《춤추는 물리(The Dancing Wu Li Masters)》라는 책을 인용해서 ‘우주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춤추고 있다’고 정의하고 싶다. 우주 또한 쉼 없이 호흡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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