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말 잘 듣지 않을 권리, 대한민국의 남은 희망
[기자의 눈] 말 잘 듣지 않을 권리, 대한민국의 남은 희망
  • 김애경 기자
  • 승인 2019.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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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경 기자
김애경 기자

헌정사상 초유의 일 시즌 2.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관련 뉴스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시즌 1은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두 사건을 겪으며 드라마 ‘오만과 편견’ 속 대사가 떠올랐다. “나쁜 놈 중에 가장 나쁜 놈은 눈에 안 띄면서 성실한 놈이다.” 5년이 지난 드라마지만 참 인상 깊은 대사로 남아있다. 

2017년 3월 이탄희 판사의 ‘판사 블랙리스트 업무 거부’가 세상에 알려진 뒤 양 전 대법원장은 줄곧 혐의를 부인해 왔다. 영장실질심사 때에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 개입과 법관 사찰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헌법재판소 비밀 누설, 법원행정처 비자금 등 자신을 둘러싼 혐의에 결백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현재까지 수사 진행 경과와 피해자의 지위 및 중요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발부한 영장에 따라 그는 수감됐다.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는 무려 44개다.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사건’과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통합진보당 재판 개입 및 제소 기획 사건’ 등 직권남용과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과 ‘국회의원 선거법 위반 사건 양형 검토 및 전달’ 등 직권 남용 및 공무상비밀누설, ‘전 부산고등법원 판사 비위 은폐 축소 목적의 직무유기’ 등 직무유기와 비자금 조성, 허위 서류 및 공문서 작성 등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방법으로 나쁜 짓을 저질러 왔으니 참 성실한 인사였다 싶다. 나쁜 사람이 성실하면 안 되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 아닌가 싶다.

‘법원이 전직 사법부 수장을 구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뒤집어졌다. 지난한 싸움이 길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결국 끝까지 이 사건을 제대로 파헤쳐 적절한 처벌이 이뤄질까하는 물음엔 사실 아직도 회의적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 ‘일 잘하면서 말 안 듣는 놈, 그거 윗사람들한테 꿀이 아니고 독이야’하고 말하는 문희만에게 구동치는 말했다. “꿀이 독이 되는 건, 윗사람 탓인 거 같은데요?”라고. 이런 상황도 올 수 있다.

사법부 수장의 구속에 대해 ‘사법부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는 일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범죄 혐의가 44개나 되며 사법농단의 정점에 있는 공범을 구속하지 못했다면 이것이야말로 더 큰 ‘사법부의 오점’이다.

이 사건을, 말 잘 듣지 않으며 일 잘하는 ‘꿀’이 끝까지 파헤쳐 대한민국 남은 희망의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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