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미 (라온오케스트라 단원)
백경미 (라온오케스트라 단원)

흐르는 강의 곁에서 만나는 바람은 장난꾸러기다. 가만히 흐르는 강물을 이리 저리 흔들어 대며 깡충거리고 달려 물의 표면에 바람의 발자국을 가득 찍어댄다. 문득 비토리오 몬티(Vittorio Monti)의 차르다스(Czardas)를 눈으로 듣는 듯하다. 

맨발 그리고 탬버린, 치렁치렁한 치마, 밴드로 묶은 긴 머리채를 흔들며 자유롭게 추어대는 춤. 집시의 음악. 힘차고 가볍게 연주되는 엄청난 속도의 빠르기 속에 깊숙이 흐르는 우수. 그 선율이 지금 저 바람의 발자국 가득 찍힌 강의 풍경과 꼭 닮았다.

2박자의 헝가리 민속춤곡인 차르다스는 아주 매력적인 음악이다. 이 곡은 슬픔이 가득한 마음 가장자리처럼 라수(lassu)라는 비애(悲哀)를 띤 느린 도입부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내 프리스(friss) 혹은 프리스카(friska)라고 하는 빠른, 야성적이면서 광적인 데가 있는 주선율로 경쾌하게 건너뛰며 강력한 싱커페이션(당김음)과 리듬으로 듣는 사람의 귀와 마음을 다 빼앗아간다. 

그 빠르기에 숨이 찰 즈음 연주자의 테크닉을 요하는 묘한 매력을 품은 선율이 다시 느리게 섞여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다시 자유롭게 풀어진 빠른 스피드로 마무리 되는 음악.

처음에는 만돌린을 위한 곡으로 만들어졌지만 빠르고 싱싱한 템포와 테크닉을 요하는 이 음악은 바이올린, 리코더 심지어는 콘트라베이스로도 연주를 한다. 그 스피드가 연주자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켜서 그런가 보다. 

나는 미칼라 패트리의 리코더로 연주되는 차르다스를 좋아한다. 가벼운 파스텔화를 마주 대하는 느낌처럼 편안하기 때문이다. 요건 얼음이 풀리는 강가에 버들강아지 피는 봄에 들으면 딱 좋다.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와 함께 연주하는 차르다스도 감동적이다. 벤게로프의 빠른 스피드를 거침없이 따라붙는 콘트라베이스의 속도가 듣는 이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그렇지만 오늘은 데이빗 가렛의 바이올린으로 차르다스를 듣는다. 서늘한 우수가 깃든 눈빛으로 집시 같은 연주복을 입고 너무나 가볍고 여유 있게 그 스피드를 희롱한다. 심지어 섹시하기까지 한 연주자가 잔잔한 수면을 흔들며 발자국을 산만하게 찍어대는 장난꾸러기 바람과 무척 닮았다. 

연주를 듣다가 사랑에 빠져 곡을 통째로 사랑하게 되는 일. 그런 느낌은 일생에 자주 오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데이빗 가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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