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지난 15일 구곡폭포에 다녀왔다. 봄, 여름, 가을 계절마다 가족나들이로 갔지만 겨울나들이는 특별히 ‘아빠와 함께’하는 날이다. 아이들과 함께 가기 전날 미리 방문했던 숲길은 눈이 귀한 겨울답게 매우 건조하고 먼지가 일었다. 

아침! 꿈속처럼, 선물처럼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 내린 눈으로 세상은 하얗게 겨울 나라로 변해있었고 눈송이가 춤추며 쉴 새 없이 내려왔다. 금요일 오전인데도 전체 인원 중 아빠 참가자가 반이 넘었다. “아이들이 많이 자랐습니다. 오늘은 폭포까지 가겠습니다. 아이들 힘으로 가게 해 주세요.” 모자 쓰고, 장갑 끼고, 따뜻하게 옷을 껴입은 아이들이 눈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빠들은 아이들 뒤에서 천천히 걸었다. 눈을 뭉치는 아이를 거들어 작은 눈사람을 만들고, 아이와 함께 돌탑을 쌓고, 친구와 재잘거리는 아이를 따라 이미 친해진 옆 아빠와 묵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폭포가 얼어 장대한 빙벽을 이룬 장소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빙벽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며 환호하고, 가방을 열어 따뜻한 차를 꺼내 나누어 마셨다. 내려오기까지 두 시간 동안 아이와 놀아주려고 별다른 시도를 하는 아빠는 없었다. 아이는 아빠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내 즐거워했다.

최근 몇 년간 아빠들의 육아 참여가 높아졌다. 실질적인 수치로 확인할길은 없지만, 일간지에 아빠 육아에 관한 내용이 매주 연재되기도 하고 ‘라떼파파’도 매체를 통해 자주 접하게 된다.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끌며 다른 한 손으로는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 다니는 스웨덴 아빠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반면 우리나라 아빠 육아의 주된 일상은 ‘아이와 놀아주기’로 보인다. 몸을 격하게 움직이는 놀이를 시켜주거나, 새로운 놀이 장소로 데려가 준다. 책을 읽어주고 괴물이 되어 과격한 아이의 공격에 멋지게 쓰러져 주고…. 하지만 본인의 일상과 분리된 놀아주기는 아빠들을 쉽게 지치게 한다. 토요일 하루 놀아주고 일요일은 내내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며 보내야 한다. 

나는 그 이유가 아빠의 착각, 아니 우리 모두의 착각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놀아주기!” 세상에서 제일가는 놀이전문가는 아빠가 아니라 아이들이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곳에서도, 빈 놀이터에서도, 개울가에서도, 숲에서도, 방에서도 아이는 놀 수 있다. 더구나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아빠가 가까이 있다면 아이는 안전한 요새 안에 있는 것처럼 두려울 것이 없다. 아이와의 놀이 시간에 굳이 아빠의 존재외에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빠의 일이다. 망가진 의자를 고치거나, 방을 쓸고, 닦기, 빨래 널기와 개기, 내가 사는 동네나 아파트 주변을 정리하고 쓰레기 줍기, 몸을 움직여 주변을 가꾸는 일이면 더욱 좋겠다. 

아빠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행동들이 아이에게 좋다. 도구를 써가며 무언가를 만들거나 고치는 아빠의 모습은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모범이 될 것이다. 아이는 사랑하는 아빠의 의미 있는 몸짓과 행동을 모방하고 받아들이며 상상력을 발휘해 놀이로 구현한다. 아빠의 그런 모습을 통해 아이는 재미있게 놀 거리를 발견하고 삶에서 가치 있는 일들을 스스로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때로 산책을 나서자.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들은 아이가 스스로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도록 잠시 참아보자. 

내가 관찰한 보통의 아빠 중 대부분은 밖으로 나가면 쉼 없이 아이와 놀아주기 위해 말로 간섭한다. “여기 올라가 봐”, “저 위에 다람쥐가 있네.” “야! 멋지다.” 아이의 놀이를 중단시키는 성의지만 본인만 모른다. 그냥 놔두면 아이는 자기의 관심을 따라 관찰하고 놀고, 움직인다.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겨울 숲을 걸었던 아빠들의 표정은 평화롭고 행복했다. 아이를 이끌고 안내하는 대신, 아이를 따라 걷고 아이의 관심사에 함께 집중하며 아이를 따르는 것으로 충분했다. 아이에게 체험을 시키려고 맥락 없는 체험 교실에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주변을 사랑의 온기로 채우고, 의미 있는 자기의 일을 하는 어른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아이에게 최적의 놀이 환경이고 체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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