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덕 (춘천시민연대 운영위원장)
권오덕 (춘천시민연대 운영위원장)

지난 4일밤 미시령 아래 전신주에서 시작된 불이 강풍을 타고 속초 시내로 향하고 있을 무렵 국회에서는 운영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국회 출입기자들의 말에 따르면 상황 대처를 위해 국가재난컨트롤타워의 책임자인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에 대한 이석 요구를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묵살하고 현안 질의를 계속했다고 한다. 정 실장은 소방당국이 전국적 수준인 대응 3단계를 발령한 뒤에도 50여분이 지나서야 위기관리센터로 복귀할 수 있었다. 나 원내대표는 이후 “여당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심각성을 알 수 없었다”고 말하면서 그 책임을 여당에게 돌렸다. 당시 운영위 소속으로 속초고성양양이 지역구인 같은 당 이양수 의원은 소식을 듣자마자 속초로 출발했고 뉴스 속보를 통해 사태의 심각성이 보도되고 있었지만 자유한국당 의원 누구도 국가적 재난사태에 대한 심각성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촛불 좋아하더니 온 나라에 산불, 온 국민은 홧병’ 이라는 말로 국민들의 공분을 샀고 같은 당 민경욱 대변인은 ‘산불이 북으로 번지면 북과 협의해 진화하라’는 대통령의 말에 대해 ‘빨갱이 맞다’는 한 누리꾼의 글을 공유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정치에 대해 분노로 시작해서 종종 ‘정치가 그렇지 뭐’ 라는 자조 섞인 말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비리나 국민의 뜻을 저버리는 정당간의 타협을 볼 때마다 주로 그랬다. 하지만 국민의 생존이 달린 긴박한 상황조차도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모습 앞에서 왜 그래야 하는지 물음을 던지게 된다.

5년 전 세월호가 반쯤 잠긴 상태에서 방송국마다 생방송으로 특별재난방송을 실시하고 있었음에도 올림머리를 하느라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 채 뒤늦게 나타나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드냐”는 말로 정부의 위기 상황  대처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 대통령이 있었다. 구조를 위해 출동하는 해경을 붙잡고 VIP에게 보낼 보고서 작성이 먼저라고 윽박질렀던 것이 당시의 콘트롤타워였다. 304명의 국민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음에도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묻는 국민들의 외침을 정쟁으로 변질시키려고 애썼던 정치세력이 있었다. 

성난 파도 같았던 국민들의 분노는 가만히 있기를 거부하고 국민의 권리를 앞세우며 정치를 바꿨다. 진상규명은 바다에 침몰되어 있었지만 희망은 파도처럼 정치에 대한 냉소를 몰아냈다. 

이번 동해안 산불 진화과정에서 국민들은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줄지어 달리던 소방차의 모습에 경이로움을 넘어 감탄을 보냈다. 산불 발생 2시간여 만에 전국에서 872대의 소방차와 3251명의 소방공무원들이 강원도로 향했다. 525ha의 산림과 135채의 주택이 잿더미가 된 엄청난 피해에도 불구하고 사망자는 단 1명에 그쳤고 화재 발생 14시간여 만에 주불을 진화하는 등 빠르고 체계적인 대응이 가능했다. 독립된 소방청이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체제를 운용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행정안전부, 국방부, 산림청의 유기적인 협조와 발 빠른 대응 그리고 신속한 특별재난지역 선포는 정부의 재난 대응 시스템의 정상적인 작동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고 그런 정치가 아닌 ‘그래, 이게 바로 정치야’라는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했다. 

제대로 작동하는 정치시스템은 국민으로 하여금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만든다. 재난 대비를 위한 일상적인 점검과 시스템 운영 방안을 구축하고 가동하는 일이 정치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그럴려면 정치가 늘 그랬다고 체념하는 우리의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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