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사이코드라마 연출가 이강욱 정신의학과 교수

“인간은 스스로를 위해 살아가죠. 이타적인 삶도 결국 나를 위함이죠. 남을 위해 태어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요. 모든 인간에게는 이타적인 삶으로 행복을 느끼는 유전자가 내재돼 있고 고립되면 소멸되죠. 이타심은 사회집단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거예요. 인간이 맹수로부터 안전해진 이후 최고의 관심사는 어떻게 조직에 잘 속하느냐의 문제였죠. 생존 본능인 거예요. 봉사가 삶을 풍부하게 하는 이유예요.”

 춘천시민을 대상으로 스스로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고 ‘나 찾기’ 힐링심리극을 연출하는 강원대 정신의학교실 이강욱(55)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어색할 새도 없이 충분히 호기심이 자극되었다. 당신과 나, 우리의 내면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간은 사회조직을 이루어야 생존이 가능하죠. 사회관계가 가장 중요하니까 애타게 원해요. 사회관계의 친밀성이 없으면 불안정하고 두려워하죠. 그 출발점이 엄마와의 애착관계라서 발달단계의 애착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일을 무용화 시키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일이 제가 하는 일이고 지금 뭘 할 수 있는가를 보는 입장의 차이가 이론의 차이가 되는 거예요.”

이강욱 교수
이강욱 교수

원인을 밝혀 분석하고 해소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것은 물리적 입장에서 오류가 없다. 지식의 축적과 과학의 발전 덕분에 달나라까지 갔지만 사람의 마음에는 잘 적용되지 않기에 정신의학과 심리학이 존재한다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된다. 

“인간은 고통을 느끼는 순간 성장의 시기가 왔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인간은 꼭 그렇게 해야 해? 그냥 이렇게 살면 되지. 합리화, 판단, 핑계, 회피 등을 통해 고통을 피하려고 하죠. 그것이 인간 진화의 원동력이기도 해요. 내 삶의 가치, 목표가 무엇인지 먼저 깨닫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수용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죠. 고통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 그것이 진짜 ‘나’고 나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을 통해 생각이나 감정에 휘둘리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죠. 수용을 위한 수련과 수행에, 의도를 갖는 언어적 표현보다 훨씬 원초적인 몸이, 어떻게 움직이고 싶어하는지 감각을 느껴 보는 훈련법들이 힐링커뮤니티댄스나 여러 활동의 매개가 되는 거죠. 키워드는 자발성과 창조성이죠. 우리 몸은 생명체로서 활력이 있고 맥락에 맞게 움직이고 싶어 해요. 다만 그것을 수치스러움, 경박함 등으로 부정하는 거죠.”

이 교수가 유난히 신체적 감각으로 풀어내는 치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세월호 사건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의 치유를 돕기 위해 학급마다 2명씩 20명의 전문가 집단을 모집했고 이 교수도 망설임 없이 자원했다. 그러나 현실은 충격이었다. 유가족들은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다. 이 교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사명감은 차치하고 나름 전문가로 많은 상담과 치료를 해왔던 사람으로서의 자존심과 오기도 작동했던 것 같다고 당시를 기억한다.

 “냉랭하게 바쁘다면서 피하기에 ‘필요하신 게 뭐예요?’ 라고 물었어요. ‘세월호특별법서명’이나 받아오라며 한 장에 20명씩 명단을 채울 수 있는 종이를 건네더군요. 50장을 받아서 가지고 갔어요. 말할 기회를 주더군요. 회복이라는 것이 개인의 특성, 타인과 관계의 특성도 있지만 사회적 특성이 있는 거예요. 그 집단의 회복 없이는 개인의 회복이 없는 거죠. 집단이 갖고 있는 공통의 가치에 동조를 하거나 이해를 하지 않고는 접근이 안 되는 거예요. 몰랐어요. 그동안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에서 경험하지 못했으니까요. 우리는 본인들이 답답해서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왔어요. 우리가 먼저 찾아갔던 경우가 없죠. 문제는 있지만 그들은 답답해하지도,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솔루션을 제시하겠다고 간 거잖아요. 큰 차이죠.”

이후 이 교수는 광화문, 국회, 안산분향소, 팽목항으로 그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 함께했다. 경찰이 에워싼 시위 현장에 그들과 함께 있었다. 중요한 가치를 그들과 얼마나 공감하고 인정해주는가에 대한 시험을 통과하고 마음을 트니 고구마 줄기 엮듯 그들의 내면이 풀려나왔다. 그렇게 이 교수는 현실에서 사람의 마음을 여는 매개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공부와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환자는 환자대로 치료하지만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은 없죠. 그래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심리적 어려움 해소를 위한 극적인 장치를 만들고 싶어서 사이코드라마를 기획하게 되었죠. 기본은 드라마지만 개인의 인생사에서 있었던 힘든 사건이나 장면을 중심으로 그 사람의 상처를 돌아보고, 그 기억에 담긴 감정을 다시 체험하는 거예요. 당시의 억눌렸던 감정과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고 사실은 내가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행동이나 말이나 감정표현을 원했던 방식대로 해보도록 하는 거죠. 그건 대단한 힘이 있어요. 원래 기억 위에 새로운 기억을 마법처럼 덮는 거죠. ‘나도 이랬어요. 당신 보니 나도 이런 기억이 떠오르네요.’ 이런 반응은 인간들이 비슷한 상황과 감정을 느끼므로 혼자 보다는 집단 경험을 나누며 서로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는 힘이 되는 거예요. 그 힘으로 자신의 감정노출을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돼요. 내 고통을 가장 단순명료하게 극복하는 방법은 체험하는 거죠. 충분히 내 힘든 감정을 재경험하고  체험했더니 ‘아무 일이 없구나’ 라고 느끼는 거죠. 집단이 같이 통하는 느낌을 받게 되고 함께의 효과가 나타나는 거예요.”

아직은 동일업계 학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일에 전념하며 이 교수가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뭘까.

“저는 무당이 되려고 해요. 샤머니즘은 힐링이죠. 나는 왜 자꾸 이런 곳으로 관심이 끌리는 걸까 자문하곤 해요. 힐러가 되려면 포용할 수 있는 깊이와 마음의 확장이 있어야 해요. 그 확장을 통해서 내 삶의 종결(죽음), 존재로서 갖는 근원적인 한계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힐러가 되고 싶은 내면의 자발적인 욕구가 생긴 것이 아닌가 싶어요. 결국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 거죠. 인간에게는 그런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마음챙김) 기반에 대한 수련과 수행 관심사를 유지하고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여 일반 시민들을 만날 수 있는 적정 포인트가 사이코드라마였다고 이 교수는 말한다. 사이코드라마를 통해 사회적 관계, 집단의 응집력을 자원으로 만들고, 개인이 스스로 감당하도록 도와주는 적정 포인트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보려는 시도다. 

내 존재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 힐러가 되고 싶다는 이 교수. 정신과 의사로서는 쉽지 않은 고백이다. 출신지를 묻자 안드로메다에서 왔다고 말하는 그의 시도는 확실히 남다르다. 그 남다름이 피곤함이고, 원치 않는 두드러짐일 수 있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저하지 않는다. 추운도시, 낭만과 문화가 있는 도시 춘천을 기반으로 살아온 것에 대한 혜택을 춘천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일탈적 행보와 힐링심리극 시도의 진정성이 온전히 전해진다.

임희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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