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자라기] 하루 종일 숲에 아이를 풀어두는 근사한 공범이 되어보자
[아이와 함께 자라기] 하루 종일 숲에 아이를 풀어두는 근사한 공범이 되어보자
  • 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 승인 2019.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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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이번 어린이날 선물로 무엇이 좋을까?’ 아이를 둔 거의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완구회사들과 온·오프라인 쇼핑몰에선 어린이날 특수를 누리기 위해 회의를 하고 전략을 짰을 것이다. 무언가 선물을 하려해도 이미 아이들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갖고 있다. 디즈니 같은 기업에서 시의적절하게 새 애니메이션을 개봉했다면, 혹은 어린이대상 프로그램이나 게임에서 새로운 캐릭터가 나타난다면 고민해결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길어야 일주일이 지나면 아이에게서 잊혀 질 비싼 플라스틱 덩어리가 한 개 더 쌓이고 지갑이 얇아질 뿐이지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런 선물은 어떨까? 놀잇감이 아니라 놀이를 선물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과 오래 살아온 사람으로서 제안을 하자면 놀이를 선물로 제대로 주기 위해서는 숲이 가장 좋다. 

춘천에는 아이들이 넉넉히 즐길 수 있는 숲이 참 많다. 구곡폭포, 용화산 휴양림, 강원 숲체험장, 집다리골, 실레마을 숲길, 안마산, 국립박물관 오솔길, 대룡산길, 드름산…. 해발 899m의 대룡산에 놀랄 필요는 없다. 우리 목적지는 산꼭대기가 아니라 그저 흙과 나무, 돌멩이, 풀이 있는 자연스러운 공간이다. 내가 발견한 것을 아이에게 알려주려고 하거나 의도적으로 놀아주려고 애쓰지만 않는다면 아이는 스스로 재미난 것들을 발견하고 놀이를 찾아낼 것이다. 

뜨거운 햇살을 가려줄 모자를 쓰고, 갑자기 달라지는 기온에 대비할 얇은 겉옷을 입고, 아이도 어른도 발에 잘 맞는 신발을 신어야 한다. 먹거리는 가능한 소박하게 준비하자. 소풍을 간다고 매번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도시락을 싸야하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 한 밥, 평범한 반찬을 국물이 흐르지 않게 담고 수저도 챙겨야한다. 물통도 잊지 않는다. 소풍날 간식으로 오이, 당근, 파프리카는 어떨까? 식사의 반찬이 아닌 놀이 중 목마를 때, 간식으로 어른을 따라 채소조각을 먹어본 대부분의 아이들이 기꺼이 즐기는 모습을 보아왔다. 어떤 놀잇감도 챙겨갈 필요가 없다. 오늘 하루 쯤 검불을 뒤집어써도, 흙이 좀 묻어도 애써 모른 체 하자. 혹시 아이가 무언가 대단한 것(도토리 깍지, 혹은 작은 돌멩이)을 발견하고 나를 부른다면 눈으로 웃어주며 “어! 네가 그걸 찾아냈구나” 정도로 담담하게 반응해주자. 격하게 반응하면 아이가 어른을 기쁘게 해줄 무언가를 찾아내느라 놀이에 몰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이의 놀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선 무언가 어른의 일거리가 필요한데, 숲에서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갖고 있지 않다면 책 한권과 종량제봉투를 준비해 가면 도움이 된다. 아이 뒤를 따라가다 쓰레기를 발견하면 행운이다. 쓰레기를 주워 담는 의미 있는 행동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느 한 곳에 멈추어 놀이가 길어지는데 더 이상 주울 쓰레기가 보이지 않는다면 나뭇잎 수집가가 되어본다. 각기 크기와 모양이 다른 나뭇잎들을 천천히 한 장씩 소중하게 주워 책갈피에 꽂아 둔다. 

목이 마르지 않은지, 배가 고프지 않은지, 무엇을 먹고 싶지는 않은지 먼저 물어보거나 먹을 것을 주지 말자. 아이 스스로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프다고 요청할 기회를 주자. 목이 마른 것도 모르고, 배고픔도 잊고 놀이에 빠져있을 수도 있다. 끼니 하나를 늦게 먹거나 거른다고 큰일이 나지 않는다. 먹을 것도 잊고 놀 수 있다면 아이는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이다. 

어린이날 놀이공원을 찾아가지 않고, 근사한 패밀리레스토랑에 가지 않고, 대형 장난감가게에 가지도 않고 우리 집만 아침밥을 그대로 도시락에 담아 성의 없이 어린이날을 보낸 건 아닌가? 혹시 염려가 된다면 이웃을 한두 가족 모아서 가자. 하루 종일 숲에 아이를 풀어 둔 근사한 공범이 되어보자. 아이들은 친구와 놀 수 있어 즐거움이 배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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