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5월의 소원을 기억하다
[기고] 5월의 소원을 기억하다
  • 김진아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4)
  • 승인 2019.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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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4)
김진아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4)

어김없이 5월이 왔다. 해마다 5월 18일이 다가오면 광주를 찾는 사람, 5·18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올해 39주년을 맞은 광주민중항쟁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역사 왜곡, 망언 등이 끊이질 않아 몸살을 앓고 있다. 돌이켜보면 최근만의 일이 아니었다. 광주학살의 책임자인 전두환은 아직도 발포 명령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역사와 진실을 은폐했다. 

역사를 후퇴시키고자 하는 이들의 망동을 보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제 한 몸 바쳤던 열사들, 자국 군대의 무차별한 총질과 매질로 자식을 잃고 모든 것을 잃고 진실을 밝히는 싸움에 나섰던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올해 광주로 가는 마음이 사뭇 무겁고 진지했다.

17일 금요일 밤, 친구들과 함께 도착한 광주에는 비가 살짝 내리고 있었다. 행진과 집회 등의 일정을 잘 진행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18일 아침 황교안 자한당 대표가 기념식이 끝난 뒤 항의하는 시민들을 피해 부랴부랴 도망가고 나서는 거짓말처럼 흐린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거기 모인 시민들이 분노한 이유는 황교안을 생각하면 전두환과 박근혜가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공안검사출신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분단을 고착시킨 장본인, 역사를 왜곡하는 가해자가 뻔뻔하게도 광주 땅 영령들이 살아 숨 쉬는 민주묘역에 발 딛고 기념식에 참석하다니…. 대학생들과 수많은 시민들이 원통한 심정에 구호와 피켓으로 항의했다. 그마저도 황교안은 듣지 않았지만 꿋꿋이 기억하고 행동하는 사람들로 인해 5월이 지키고 싶었던 민주주의는 지켜지고 있었다.

이후 전남대에서 시작해 금남로 전남도청 앞에서 모이는 5·18행진과 범국민대회, 대학생들의 공연으로 꽃 피운 무대, 열사 한 분 한 분의 삶을 돌아보는 묘역답사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5·18광주민중항쟁은 내 이웃들이 빨갱이 취급 당하고 잔혹하게 죽임당하고 민주주의가 파괴될 때 당시 수많은 대학생, 택시 운전사, 버스 기사, 여고생, 구두닦이, 시장 상인, 홍등가 여성들까지 남녀노소와 계층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역할로 참여해 범죄기록 하나 없는 공동체를 이뤘던 소중한 민주유산이다. 시민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광주 금남로를 따라 힘찬 구호와 함성으로 행진에 참여할 땐 사람답게 사는 세상 꿈꾸던 5월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5·18민중항쟁 39주년에 전 CIA 요원 김용장 씨의 증언으로 전두환이 직접 광주까지 내려가 사살 명령을 내렸고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들이 새로 드러났다. 5월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기억을 지키는 싸움에서 우리가 역사의 산증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5·18의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민주주의와 분단 적폐 청산이라는 5월의 소원을 지켜나가는 것이 앞서서 나간 자들을 따르는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가 아닐까. 당장 이번 주말부터 적폐청산의 외침을 완성하기 위한 촛불을 다시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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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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