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학 분야 본상2등과 특별상 수상
강원과학고 김윤지·라지현 학생

인텔사에서 주관하는 세계최대규모의 국제과학기술경진대회(International Science and Engineering Fair) 식물학부분 본상에서 2등상(상금 1천500달러)과 특별상(상금 1천200달러)을 차지해 춘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강원과학고 3학년 김윤지, 라지현 학생을 만나면서 예상과는 다른 표정에 깜짝 놀랐다.

2년 이상 달려온 프로젝트의 결승선을 통과하고 몇 시간 전 춘천에 도착한 어린 과학도들의 모습은 우려와는 달리 너무도 활력이 넘쳤다. 그들은 여느 고등학생들과 다들 바 없이 반짝이는 눈으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큰 상도 받았는데 귀국하자마자 기숙사로 들어오라는 강원과학고가 좀 별로인 것 같다는 농담에는 깔깔 웃기도 했다.

김윤지(오른쪽), 라지현(왼쪽) 학생
라지현(왼쪽), 김윤지 학생

ISEF는 현존하는 모든 중, 고등학생 대상 과학 관련 대회들 중 가장 큰 규모의 대회로 매년 5월에 개최되며, 올해는 80개국에서 1천842명의 학생이 참가했다. 본상(Grand Award) 및 특별상(Special Award), 그리고 부상(장학금, 학비 지원, 인턴 활동, 과학 탐사)들이 주어지며, 총 상금규모는 4백만 달러에 육박한다. 이 대회에서 김윤지, 라지현 학생은 ‘머위 잎 내생균을 활용한 식중독 저항성 상추 개발’이라는 주제로 2등상과 특별상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연구는 머위에 있는 식중독 저항성을 가진 내생균을 추출, 상추에 접종해 식중독균이 서식하지 못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요지다. 명확하면서도 참신한 아이디어다. 그런데 왜 식중독에 대한 연구였을까?

“개인적으로 과학자는 한 국가나 민족에 속해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범인간적 범주에서 문제의식을 갖는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식중독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현재 개발도상국가에서는 심각한 질병이기 때문이에요. 세계인구의 10%정도가 식품매개질환으로 고통 받고 연간 42만 명 정도가 죽음에 이른다고 하니까요. 사실 선진국도 식품매개질환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에요.”

2018년 미국 질병통제센터는 미국 15개 주에서 심각한 병원성 대장균(E. Coli 0157)이 발생해 24명이 감염돼 1명이 사망하고 2명은 용혈성 요독증 증후군으로 인해 신장 기능을 상실했다고 발표했다. 캐나다 동부 5개주에서도 42명이 감염돼 17명이 입원하고 1명이 사망했다. 식중독균을 제어할 항균성을 어떻게 머위에서 찾을 생각을 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놀라웠다.

“동의보감 때문이에요. 동의보감에 머위가 식중독에 효과적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대요. 그래서 논문을 뒤지기 시작하다가 머위의 항균성을 입증한 논문을 결국 찾았어요. 선조들은 경험적으로 머위가 식중독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죠.”

논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윤지 학생과 지현 학생은 서로의 말을 거들며 말이 빨라졌다.

“상추는 머위와 같은 국화과이기 때문에 머위의 내생균을 상추에 접종할 수 있었어요. 이후 추가적인 연구가 진행되면 국화과에 속하는 다른 식물에도 적용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고요.”

두 학생은 이미 머위의 내생균에 대한 연구로 한국과학기술대회(KSEF)에서 금상을, 김윤지 학생은  전국과학전람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이번 대회에는 미생물의 발육을 저지하는 데에 필요한 항미생물질의 최소농도를 나타내는 MIC(minimum inhibitory concentration)를 측정해 기존 연구를 보완했다. 국내대회와 국제대회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두 학생 모두 비슷한 대답을 했다.

“국내대회는 실험과정 자체를 더 철저하게 검증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에 비해 국제대회에서는 좀 더 거시적인 시각으로 주제를 평가한다고 느꼈어요.”(김윤지)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국제대회는 앞으로 프로젝트를 어떻게 발전시킬지에 대한 관심이 컸어요. 아마도 실험과정의 검증은 이미 국내대회에서 거쳤다고 간주했기 때문일 거예요.”(라지현) 그리고 두 학생은 입을 모아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비영어권 국민으로서는 좀 속상한 일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주제가 좋고 연구 성과가 뛰어난다고 하더라도 영어로 발표하고 능숙하게 대답하지 못하면 국제대회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들도 원래 뛰어난 영어실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는데 이번 대회를 통해 영어실력이 부쩍 오른 것 같다며 웃었다.

김윤지, 라지현 학생의 수상을 축하하며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한국대표단.       사진=김윤지
김윤지, 라지현 학생의 수상을 축하하며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한국대표단. 사진=김윤지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니 기분은 좋아요. 실은 대회에 참가하기 전과 지금의 저는 좀 달라진 것 같아요. 그곳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내뿜는 엄청난 열기는 지금까지 제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어요.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의 강연, ISEF 수상자 출신의 유명한 과학자들과의 만남,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동기부여도 확실하게 됐고요.”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평소에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할까 궁금해 졌다. ‘스트레스’라는 말을 듣자 두 학생은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특별히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특별히 스트레스 때문은 아니지만 쉬는 시간이 생기면 SF영화를 보곤 해요. 특히 마블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번에 나온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대회 때문에 못 봤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벌써 스포(스포일러의 준말. 미리 내용을 말하는 것)해 버렸어요. 극장가서 보기는 틀린 것 같아요. 정말 보고 싶었는데…….”

윤지 학생이 우는소리를 하자 지현 학생은 웃으며 말을 잇는다.

“저는 다른 친구들이 모르는 좋은 노래를 찾는 게 취미에요. 음악을 발굴한다고 해야 할까요? 저도 잘 모르고 친구들도 잘 모르는 좋은 음악을 찾아서 같이 들으면 뭔가 뿌듯함을 느껴요.”

이럴 때는 영락없는 고등학생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고3이지 않은가. 기쁨도 잠시, 진로에 대한 압박이 느껴질 법하다. 어떤 전공을 선택하고 싶은지를 물었더니 두 학생 모두 일단 생물학을 배우고 싶단다. 너무나 당연한 대답에 질문이 무색해졌다.

마지막으로 과학고등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과학을 좋아해서 과학고에 입학하려는 친구들이 많이 있잖아요. 하지만 막상 입학해보니 의외로 수학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일단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런데요. 첫째는 우리 학교에서는 수학이 7단위에요. 일주일에 7시간이 배정되고 그만큼 점수에 반영되는 비율이 높다는 거죠. 그런데 수학에서 어려움을 겪으면 학업을 따라가고 성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게 돼요. 우리끼리 장남삼아 과학고가 아니라 수학고라는 말을 할 정도예요. 다음으로는 실제 과학에서도 수학이 많이 활용되기 때문이에요.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도 과학이라는 학문이 수학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볼수록 똑 부러지는 학생들이다. 그리고 순수한 열정을 가진 학생들이다. 먼 훗날 언젠가 예쁜 웃음은 그대로 지닌 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두 과학자의 얼굴을 그려보며 커피숍을 빠져나왔다.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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