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 (문화비평가)
이정배 (문화비평가)

영화가 사용하는 감각은 시각과 청각 두 가지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이라는 다섯 가지 감각을 기본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나아가 직감이라고 하는 여섯 번째 감각(육감)을 사용한다. 이러한 차이에서 영화와 관객 사이의 모순이 일어난다. 두 가지 감각으로 여섯 가지 감각을 자극하기 위해 영화는 여러 방법을 시도해왔다. 

영화 초창기에는 청각마저 없는 무성영화 시대를 한동안 지내왔다. 그러나 초기부터 에디슨은 축음기를 동시에 트는 방식으로 청각을 자극하려 시도했는데, 영상과 음향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고 당시 음향 기기들이 고가여서 크게 활용되지 못했다.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는 변사를 내세워 무성영화를 보면서 해설해주는 방식으로 청각을 보완하기도 했다. 

필름에 음향을 입히는 방식이 개발되면서 유성영화 시대로 진입했지만, 나머지 감각을 살리는 방법은 여전히 묘연했다. 결국, 영화이론가들은 밝은 조명을 사용하고 음향을 보다 입체적으로 입혀서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놀랍게도 관객은 시각과 청각만을 세밀하게 자극하기만 해도 미각과 후각이 자극받기에 이르렀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말처럼 영화는 지금 무엇을 관객의 눈앞에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의 과거 기억을 자극하는 기재로 작동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영화는 관객의 기억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을 자극해서 끄집어낼 뿐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먹방, 쿡방 프로그램의 흥행은 순전히 이러한 노력의 부산물이다. 

시각과 청각에 관하여 <콰이어트 플레이스(A Quiet Place)>(2018)와 <버드 박스, Bird Box>(2018)라는 흥미로운 영화가 등장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소리를 내면 숨은 괴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는 설정의 영화이고, <버드 박스>는 눈을 뜨면 괴물로 변해버린다는 설정의 영화이다. 한 영화는 소리를 제거하는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빛을 제거하는 영화이다. 

시각과 청각 중 하나를 축소 또는 제거했을 때, 관객들은 다른 감각을 적극적으로 동원한다. 소리가 제거되어야 하는 장면이 전개되면 빛과 그림에 집중하고, 빛을 최소화하는 장면이 등장하면 귀를 열어 소리에 민감하게 된다. 오감이 하나씩 사라지는 상황을 펼치는 대표적인 영화가 <퍼펙트 센스, Perfect Sense>(2011) 이다. 

한동안 영화계에서 회자하였던 <식스 센스, The Sixth Sense>(1999)는 감히 인간의 여섯 번째 감각을 자극해보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물론 그 후에 등장한 <디 아더스, The Others>(2001)나 <클로이, Chloe>(2009)등에 의해 최고의 반전영화라는 명성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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