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공유가치창출디자인연구소장)
김윤정 (공유가치창출디자인연구소장)

최근 있었던 일 몇 가지. 여고 때 담임이셨던 선생님을 평소엔 자주 뵙지도 못하다가 근래 몇 차례 만남을 통해 아픔을 알게 되었다. 장성한 아들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갖게 되면서 부모에게로 향하는 원망과 상처를 분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랜 시간 직장생활과 가정일, 내조까지 해온 한 어머니, 여성, 아내의 삶을 돌아보며 아파하시고, 어디서 어떤 정보와 도움을 받아야 할지에 대한 것이 막막하던 차에 연락을 주셨다. 상담을 해드리고,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뉴스에서 보던 일들이 어느 순간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주변을 돌아보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도 절실히 느끼셨다고 했다. 퇴직 후 봉사할 수 있는 일에 함께 하겠다는 선약도 하시며, 상처 난 마음을 다독이려 애쓰셨다. 

가까운 한 친구는 지금까지 모범생으로 속 한번 안 썩이고 자란 고등학생 아들 녀석이 공부는 해서 뭐하냐는 식의 시위 아닌 시위로 본 척도 안하고 다닌다며 한숨이 가득이다. 어느 집에서나 사춘기 자락의 지나가는 일탈이라고 사소하게 넘겨버릴 수도 있는 사안이겠지만, 여고생 딸을 둔 엄마로 우리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목표물과 일상의 생활을 지켜보면 어른으로서 참 미안한 것들이 많다. 내가 그렇게 만들지 않았더라도 무심하게 누군가에게 의지한 결과들이 하나둘 쌓인 결과라는 점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아픈 아이들이 불안한 청소년이 되고, 또 스스로를 세우기 어려운 땅에 고립되는 경우들이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보인다. 그럴수록 새삼 다잡게 되는 것 역시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람’으로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누군가의 옆에 ‘괜찮은’ 사람이 되어주고, ‘안전한’ 환경 속에 함께하는 것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번 민들레에선 ‘창의적 공유지에서 시작하는 학습과 돌봄’이라는 제목으로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씨의 글이 실렸다. 저출산, 고령화시대라는 말이 일상화된 지금, 우리는 어떤 교육과 돌봄을 할 것인가? 서울을 중심으로 일부 지역들은 ‘온마을 돌봄체계’, ‘우리동네 키움센터’와 같은 사회적 돌봄 체계를 만든다고 한다. 기존에 길을 만들어온 공동육아나 대안교육과 더불어 선택의 다양성은 늘어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본질적 질문이 필요하다. 

청소년교육과 사회운동 현장에서 활동해온 조한혜정 씨는 최근 제주에서 ‘재미난 제주’라는 이름으로 재난사회를 아름답게 풀어가는 실험이자 창의적 공유마을을 지향하는 일을 시작한다고 전하고 있다. 첫 프로젝트는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재미난 클래스’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라이프 3.0세대*’의 성장에 주목하며 ‘라이프 3.0 인문학’으로 이름 짓고, 스물한 살에서 열네 살에 이르는 다섯 명의 탈학교 학생들과 함께하는 어른들이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함께 하며 진짜 배움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학교교육에만 올인하는 게 아니라, 학교와는 느슨하게 연계하면서 진짜 배움이 일어나는 창의적 공유지에서 질문을 던지고 원하는 해답을 찾고 문제 해결을 해가는 즐거움을 일찍부터 알게 하면 된다. 진짜 배움이 일어나는 곳은 호혜적 관계가 살아 있는 ‘사회’이다. 이런 저런 지속적이고 느슨한 창의적 공유지에서 아이들은 안전함을 느끼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관계를 맺으며 ‘성장’한다.” 

‘학습’, ‘돌봄’…. 이 간결하고 일상적인 단어가 가지는 깊이와 힘이 사람의 생명과 삶에 연결되어있음을 다시금 되새기며, 우리지역에 필요한 가장 가까운 “자(自)공(共)공(公)*”에 도전해봐야겠다.

*라이프 3.0세대 : 인류가 AI라는 아주 특이한 지능의 존재와 우주탐사를 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시대를 뜻함. (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에 등장)

*자공공 : 스스로 돕고(自助), 서로를 도우면서(共助), 새로운 공공성을 만들어가자(公助)는 의미.(2014년 조한혜정 지음, 도서출판 또하나의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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